조상진(본보 논설위원)
"요즘 전한상(全漢相) 전주시장은 '새한제지 병(病)'에 걸렸다. 기자와 만난 전 시장은 '그 공장 전주에 유치하지 못하면 시장도 추진위원도 모두 보따리 싸 짊어지고 전주를 떠나야 한다'고… 정말 비장한 정신적 결의란 말이야…"
전북일보 1965년 1월 24일자 1면에는 '오늘도 새한제지, 내일도 새한제지…'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당시 전주시장이 새한제지를 유치하기 위해 얼마나 노심초사했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여기서 새한제지는 최근 매각된 한국노스케스코그(주)의 전신이다. 이 회사와 삼양사 폴리에스텔 전주공장의 정착과정은 오늘날 전주공단의 조성과 궤를 같이 한다.
전주에 변변한 공장이 없던 시절 전북도와 전주시, 지역 유지들은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추진위원회를 만들고 백방으로 뛰었다. 우선 타깃은 전북과 연고가 깊은 재력있는 출향인사들이었다. 때 마침 무주출신 김광수 사장이 운영하는 대한교과서(주)가 교과서 용지의 원활한 공급을 위해 제지공장 건설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이 소식을 들은 추진위는 공장을 전주에 지어 달라고 요청했다. 이어 부지를 전주공단 예정지로 내정하고 토지 매입에 착수했다. 동시에 차관도입도 추진했다. 하지만 곧 자금난에 봉착하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과 인연이 닿았다. 삼성그룹은 1965년 중앙일보 창간 등으로 제지산업에 뛰어들 구상을 하던 중이었다.
이같은 곡절 끝에 1967년 3월, 전주 제1공단및 새한제지 기공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박정희 대통령 등 당시 실력자들이 대거 참석, 성황을 이루었다. 이후 새한제지는 전주제지로 이름을 바꿔 1992년까지 24년간 전주시민과 애환을 함께 했다. 그리고 한솔제지→팝코 전주→팬아시아 페이퍼→한국 노스케스코그 등으로 옷을 갈아 입었다.
전주제지와 함께 전주 경제를 떠받쳐 온 삼양사 전주공장도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 추진위는 고창출신 삼양사 김연수 회장을 찾아 폴리에스텔 공장을 전주에 유치해주도록 요청했다. 당시 삼양사는 울산공장 옆에 부지조성을 마친 상태였다. 추진위의 간곡한 요청을 뿌리치지 못한 김 회장은 결국 1968년 공장을 전주공단에 설립했다. 삼양사 전주 폴리에스텔 공장은 2000년 SK케미칼과 통합해 휴비스(Huvis)로 재출범했다. 경제개발연대인 1960년대 전주지역 산업은 이러한 과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난 주, 한국코스케스코그 전주공장이 미국계 모건스탠리 사모펀드와 신한은행 사모펀드 컨소시엄에 매각되었다. 이 소식을 들으며 전북 기업의 부침이 떠올라 착잡했다.
1960년대 이후 전북의 간판급 향토기업은 백화양조, 한국합판, 쌍방울 등이었다. 그리고 대상(미원)그룹이 부산 등에서 성가를 올리고 있었다.
그로부터 40년이 흐른 지금, 이들 자리는 대부분 바뀌었다. 현대자동차 전주공장, 대우자동차 군산공장,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LS전선 전주공장 등이 그들이다. 이들 기업은 대부분 외지 대기업으로 본사를 서울에 두는 공통점이 있다. 글로벌 시대에 무슨 향토기업 타령이냐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타시도와 비교해, 탄탄한 향토기업 하나 없다는 사실이 웬지 허전하게 다가온다.
/조상진(본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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