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마을에는 가옥의 건축, 시대의 생활상, 사람들이 살았던 생애사 등 한옥마을 이야기가 있다.
개별 가옥과 공동공간인 골목길, 빨래터, 선술집, 당산나무, 정자등 오랜 세월동안 사람들이 살았던 귀중한 사료와 느릿느릿한 이야기가 있다.
구전되는 집안의 생애사, 공동체 마을 이야기, 숨겨진 토속적 이야기 등 한옥마을 내력의 역사가 있다.
현대인이 엘리베이터에 갖힌 개체라면 근대의 생활은 공동체적 커뮤니티가 강한 사회였다. 골목길, 빨래터, 관혼상제에서 고유한 생활문화가 있었다.
이제 공동체와 전통 생활문화가 지닌 소중한 가치를 우리시대의 창법으로 재창조 하여 정체성의 혼란을 극복해야 한다. 경관중심의 한옥마을에서 생활사 중심의 문화지도와 이야기로 시선을 바라보자는 것이다.
모든 문화는 사람이 중심이다. '한옥이 껍데기라면 사람이 알맹이다'. 한국인의 혼이 깃든 사람과 생활이 중심되는 한옥마을을 만들어 가는데 의미가 있다.
지난달 열린 전북대 고고문화 인류학과 BKZI 사업단의 '한옥마을의 재발견' 학술 심포지엄과 특별전은 언론의 주목은 크게 받지 못했지만, 묻혀지고 숨겨진 이야기의 발견이었다는 점에서 귀중한 의미가 있었다.
이제까지 소홀히 다루어 온 스토리텔링 사업에 대한 인식 전환이었다.
작년 겨울내내 조사팀은 인터뷰를 꺼려하는 난관에서도 인내심을 발휘하여 주민들을 설득하고 대화하여 사료적 가치를 기록할 수 있었다.
함한희 교수를 비롯한 학예사, 그리고 21명의 조사팀원들의 인내와 열정으로 굳게 닫힌 문이 열리고 구술이 가능했다.
한옥마을의 근현대 생활상과 선비마을의 재발견을 학술적으로 정립해서 한옥마을의 가치를 재조명한 것이다. 전주의 자부심이고 자랑인 한옥마을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했다.
4대를 지켜오는 교동 선비집은 사랑채에 모여 강학을 하며 글씨를 쓰는 인재양성의 요람이었다. 한 시대의 바둑 명인들인 조남철 이강일 정동식 김수용 등이 거쳐간 전북 바둑의 산실 이야기며, 교동에 시집와서 45년째 살고 있는 한 주부의 소박한 꿈 이야기도 감동적이었다.
"제 꿈은 메주 끓여서 대롱대롱 달아놓고 일제시대 1등급 받은 우물에서 술도빚고 이쁘게 담장쳐서 한옥 돌담에 기와를 얹고 싶어요."
특별한 역사에서부터 평범한 이야기까지 한옥마을 건축물을 전수조사하고 이야기를 구술해낸 조사팀의 가장 큰 업적은 사라진 선비길을 되찾고 선비정신을 담은 것이었다.
옥류동, 한벽루에서 자만동 산자락 따라 향교뒤 언덕, 전주천 따라 지금의 향교길은 선비들이 교류했던 터, 흔적에서 구술을 찾아낸 일이다.
늦은감이 있으나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소외되었던 유학자들의 정신사와 삶, 조선말 선비들의 정신적 유산인 전북유학과 전북실학, 의병운동의 산실이었던 흔적이 다시 찾아졌으니 말이다.
전통을 보존하고 개발하기 위해서는 역사와 문화, 인물에 대한 면밀하고 정확한 조사연구가 필요하다. 그 바탕으로 한옥마을 보존·개발계획이 이루어져야 마땅했으나 사전 작업이 미흡해 옥류동 자만동의 서당, 사우등을 전통문화구역내에 포함시키지 못한 채 심하게 훼손되고 방치되게 했다.
선비의 청렴이 필요한 현 시대에 역방향으로 질주하는 우리의 자화상은 아닐까. 겉만 보이고 속은 볼줄 모르는 안목의 부재다.
/김남규(전주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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