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없는 세계에 던지는 작은 빛
"극도로 피곤하거나 굶주렸을 때 찾아오는 알 수 없는 적의와 지나친 자기비하, 그리고 무기력증, 그 모든 감정들이 자신에 대한 원망으로 향할 때 몇줄의 글을 종이에 적어넣게 된다."
자그만한 체구에 얌전한 미소를 짓는 시인은 의외로 과격하다. 투박한 말투에 목소리도 크고, 시는 더더욱 참담하다.
200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독산동 반지하동굴 유적지'가 당선돼 작품활동을 시작한 김성규 시인. 이제 서른둘인 시인의 섬세하면서도 조심스러운 눈은 생의 비참함을 꿰뚫어본다. 최근 낸 첫 시집은 제목 부터가 「너는 잘못 날아왔다」(창비)다.
'처녀의 시체가 호두나무에서 내려진다 / 눈 위에 눕혀진 그녀의 얼굴이 차갑게 빛난다 // 이듬해부터 가지가 찢어지도록 호두가 열린다 / 나일론 줄에 목을 감고 있던 그녀의 뱃속 / 아이가 숨을 헐떡이며 / 죽어간 것을 사내들은 알고있다 (…)' ('존재하지 않는 마을' 중)
'사내가 들것에 실려나온다 / 쏟아지는 빗줄기 속 // 상가 입구에서 노파가 팔을 떨고 있다 / 3층 베란다 유리창이 깨져 있다 (…) 내 이마를 짚어보았다 / 차갑게 식어 있었다 / 소리를 질렀다 /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목소리' 중)
고개를 돌려 외면하고 싶은 것들. 그러나 시인은 묻어놓거나 덮어놓은 것들을 집요하게도 세상에 드러낸다. 이 세상 어디에선가 벌어지고 있는 참상들을 환한 태양 아래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나서야 이제는 슬프지도, 아프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나의 시가 축복 없는 이 세계에 작은 빛이라도 던져주기를…"이란 '시인의 말' 마지막 대목에서 짐작할 수 있다.
박형준 시인은 "김성규는 동세대를 특정짓는 시 경향과도 구별되고 재래의 리얼리즘에서도 멀찍이 벗어나 있다. 동세대의 새로운 조형기법을 받아들이되 세련된 취향과 육체적 욕망에 기초한 감각적인 환상 대신 이 시대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비극적이면서도 아름다운 환상세계를 창출하고 있다"며 "강단 있는 신예의 등장이 더없이 반갑다"고 말했다.
독특한 방식으로 농촌과 도시를 연결하면서 도시의 잔해로부터 새로이 살아나는 것을 주목하기도 하는 김성규 시인. 그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표현하기 어려운 어떠한 감정'을 전한다.
시집 제목은 수록작 '불길한 새' 마지막 연 '너는 잘못 날아왔다 / 너는 잘못 날아왔다'에서 그대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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