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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가을의 문턱에서 - 김용택

김용택(시인)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분다. 햇살은 지구로부터 조금씩 멀어져 가며, 지상에 따가운 햇볕을 내리 쬔다. 가을이 오고 있다. 인간들이 아무리 '철'없이 곡식을 가꾸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서 자기들 마음대로 생태와 순환을 조정하려 해도 오고 가는 여름과 오는 가을은 어떻게 하지 못한다. 어김없는 저 가을 앞에, 계절 앞에 고개 숙여라. 저 위대한 자연의 질서와 순환 앞에 무릎 끓어라.

 

올해는 소낙비가 유독 많았다. 비가 하도 국지적으로 그것도 많은 양의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기상청도 두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기상청의 날씨 오보를 가지고 말도 많았다. 그러나 기상청이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아니 우리 인간이 예측 할 수 없을 정도로 지구의 기후가 변해버린 것이다.

 

뜨거운 여름날 소낙비는 모든 곡식에게 거름이고 약이다. 특히 벼가 동 베어가는 8월 중순을 넘어서서 소낙비가 쏟아지다가 날씨가 확 들어버리면 햇살은 정말 뜨겁게 대지를 내리쬔다. 어른들이 그런 날씨를 보며 "하따, 벼가 한 뼘씩은 커 불것다." 하시며 좋아 하신다. 아닌 게 아니라 소낙비가 뚝 그치고 난 후 벼를 보면 벼가 쑥쑥 자라는 것처럼 보인다. 1년 중 가장 늦게 씨를 뿌리는 배추와 무씨를 뿌리고 쪽파를 심을 때다. 대게의 곡식은 봄에 씨를 뿌려 가을에 수확을 하는데, 그 중에 무와 배추와 쪽파는 한 여름에 씨를 뿌려 가을 늦게 거둔다.

 

어렸을 때 어머니와 배추 씨를 땅에 묻으며 물었다. "어매, 왜 이렇게 한구덩이에 여러 개의 씨를 묻어?" "한 개는 날아가는 새들이 먹고, 한 개는 땅에 있는 벌레가 먹고 땅위로 솟은 싹은 사람들이 먹는다."고 하셨다. 이제 그 말도 옛말이 되었다.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벌레와 병충해가 극성을 부리고, 날짐승 들 짐승들이 곡식을 '공격'한다.

 

농부들만큼 자연과 생태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도 드물다. 동네 앞 정자나무에 잎이 피는 것을 보고, 소쩍새 우는 소리를 듣고 그해의 흉년과 풍년을 점친다. 달의 모양, 바람 부는 방향과 몸에 느껴지는 바람결로 비가 오는 것을 안다. 이 때 쯤 어디를 가면 강물에 다슬기가 많다는 것을 알았고, 짐승과 곤충들의 움직임을 보고도 날씨를 점쳤다. 놀랍게도 그들은 그것을 오랜 전통으로 전해 주었고, 그렇게 자연에서 배우고 자연이 가르쳐 준 교육내용을 고스란히 물려주고 물려받았다.

 

하늘이 높고 파랗다. 지상의 모든 나무와 풀과 짐승들이 부지런히 가을을 준비한다. 위대하고 성스러운 자연의 약속을 농부들은 믿고 살았다. 그것이 농사였다. 농부들은 땅에 곡식을 심어 곡식을 키우고 곡식이 익으면 거두어 자기도 먹고 세상으로 곡식을 나누어 주었다. 땅을 살리고 곡식을 살리고 자기를 살리고 세상을 살리는 농부들, 그들의 저 오랜 삶을 우리들 삶의 뒷전으로 밀어내고 있다. 동네 어른들이 맑게 쏟아지는 가을 햇살 속에 자라는 벼와 곡식들을 보며 한탄한다. 우리들이 농사지은 것은 값이 땅이 꺼지게 떨어지고 우리가 사오는 것들 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다고. 그러기를, 그런 세월이 얼마나 오래 되었던가. 가을의 문턱에 서서 농부들의 한숨이 우리 땅을 꺼지게 한다.

 

/김용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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