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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마당] 고은의 故鄕 이야기 - 황현택

황현택(전 신흥초등학교교장)

예치과 4층 문화센터로 산천을 닮은 사람을 찾아갔습니다.

 

주최 측 박순옥 님의 아름다운 시낭송이 마음을 열어줍니다.

 

연단에 오른 시인의 검은 테 안경 속 눈자위에 벌써

 

진솔한 고향이야기가 한 웅 큼 씩 묻어있습니다.

 

10대 후반에 고향을 떠나 나그네로 30년 떠돌다 찾아온

 

시인의 고향은 나운 벌 개구리 울던 옛 고향이 아닙니다.

 

뒷동산 할미산에 진달래 피워놓고 기다리는 고향도 아닙니다.

 

어린 학동의 신고로 파출소로 끌려가

 

밤을 지새우다 나오는 낯 설은 고향입니다.

 

이건 고향에 소홀했던 댓 가입니다.

 

시인의 진정한 고향은 시인의 기억 속

 

영원의 시간 속에 들어 있었습니다.

 

째보선창에서 바라본 장항굴뚝하얀 연기가

 

미제방죽 슬픈 전설이

 

백두게 엄마바위 애기바위도 시인의 고향입니다.

 

시인의 고향이야기 속 진실과 순박함이

 

고향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로 가득히 채워주고 있습니다.

 

이혼하는 숙모에게 노랑저고리 다홍치마 입혀놓고

 

멋진 이혼 식 벌였던 삼촌의 이야기,

 

농경사회 50리 절대거리를 떠나 수 천리 머나먼 땅

 

함경도로 시집간 슬픈 당고모 이야기는

 

20세기 고향위기에 처해있는 떠돌이 나그네들,

 

문명사회병 환자들을 치유할 단방약입니다.

 

시인의 고향 군산은 정기어린 명산대천이 없습니다.

 

미와사끼 구마모토 농장, 미면 제이농장 등 일제의 흔적들,

 

월명동 일산가옥은 살구의 참맛어린

 

순순한 고향 맛을 잃게 합니다.

 

용동리 고은태는 어머니의 용꿈과

 

아버지의 돼지꿈으로 태어나지만

 

아버지의 빚보증은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전락시킵니다.

 

질곡의 어려운 그 시대가 시인을 두 개의

 

문학사건으로 이끌어 갑니다.

 

하나는 밀기울 껍데기에 나물 쳐 옥수수 죽 쑤어 먹던

 

식민지 시대의 배고픔 입니다.

 

고모등허리에 업힌 어린 소년은

 

'고모 배고파, 저 별 따줘'

 

밤하늘의 풍요로운 별들이 모두 밥입니다.

 

30년이나 감추고 지내던 부끄럽던 별밥은

 

민주주의를 목 놓아 노래하던 70년대 후반

 

꿈틀꿈틀 살아있는 위대한 시를 낳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화살이 되어/온몸으로 가자/ 허공 뚫고/온몸으로 가자/가서는 돌아오지 말자/ 박혀서 박힌 아픔과 함께 썩어서 돌아오지 말자/

 

우리 모두 숨 끊고 활시위를 떠나자/몇 십 년 동안 가진 것/

 

몇 십 년 동안 누린 것/몇 십 년 동안 쌓은 것/행복이라던가./ 뭣이라던가./그런 것 다 넝마로 버리고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자./허공이 소리친다. 허공 뚫고/온몸으로 가자./저 캄캄한 대낮 과녁이 달려온다.이윽고 과녁이 피 뿜으며 쓰러질 때 /단 한 번/우리 모두 화살로 피를 흘리자/돌아오지 말자!/돌아오지 말자!/오 화살 정의의 병사여 영령이여!

 

'화 살'은 시인의 진실이고 절실한 꿈의 승화입니다.

 

또 하나의 커다란 문학사건은

 

한국전쟁입니다

 

한반도에 형제와 형제, 부모와 자식이

 

총을 맞대고 싸우는 비극이 벌어집니다.

 

시인은 고향을 떠나 출가를 합니다.

 

한국전쟁이란 이 큰 문학사건은 시인을

 

만인보 '귀향'은 이 땅위에 아니 세계 속에 우뚝 서는

 

큰 시인을 만듭니다.

 

너와 나 사이 태어나는/

 

순간이여 거기에 가장 먼별이 뜬다./부여 땅 몇 천 리/마한 쉰네 나라 마을마다만남이여/그 이래 하나의 조국인 만남이여/이 오랜 땅에서/

 

서로 헤어진다는 것은 확대이다/어느 누구도 저 혼자일 수 없는/끝없는 삶의 행렬이여 내일이여/오 사람은 사람 속에서만 사람이다 세계이다

 

원대한 만인보 서시입니다

 

이상과 현실은 시인의 허구와 진실의 경계선을

 

지우고 있습니다.

 

누님이 없던 시인은 누님 컴플렉스에 걸립니다

 

가상의 누님은 폐결핵에 걸린 동생을

 

지극정성으로 간호합니다.

 

그러다가 동생을 구하고 정작 자신이 그 병으로 죽고 맙니다.

 

시인의 새순처럼 청순한 순애보입니다

 

시인은 말합니다.

 

이 땅에서 시를 쓰는 일,

 

한 때 그 일은 암울의 세월과도 같다고 했습니다.

 

시가 역사의 산물이라고도 했습니다.

 

시가 죽으면 진실이 죽는다고 했습니다.

 

시인의 문학 강연 "고향이야기"를 들으며

 

내 초라한 글 쓰는 작업이 참으로

 

부끄럽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 시대 이 나라의 자랑 고은 시인님이여

 

오래오래 건강하소서

 

/황현택(전 신흥초등학교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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