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춤의 본질은 절제에 있다. 그 어떤 감정도 쉽게 표출하지 않고 안으로 안으로 차곡차곡 쌓아 깊은 곳에서 풀어낼 때, 그 때 비로소 제 맛이 있다.
그러나 28일 오후 7시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에서 열린 '청의 눈물'은 한국춤이 가진 정제된 멋을 느낄 수는 없었다.
단순히 널마루무용단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면 그대로의 만족이 있었겠지만, 한 편의 공연물로서 완성도나 작품성을 논하기에는 좀더 다듬고 좀더 체화시킬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청의 눈물'은 '심청가'를 춤으로 표현한, 널마루무용단의 판소리 다섯바탕 두번째 이야기였다. 판소리의 땅 전북에서 판소리 다섯바탕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한다는 것만으로도 의미있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이 전라북도무대지원사업과 전주세계소리축제 국내초청공연에 선정된 것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널마루무용단은 이미 지난해 소리축제에서도 '춘향가'를 바탕으로 한 '춤 추는 춘향'을 올려 관객들로부터 호평을 받았었다. 지난해 '춤 추는 춘향'의 전체 컨셉이 레드였다면, '청의 눈물'은 물을 상징하는 블루로 춤과 도창, 국악관현악단, 판소리합창단이 현장에서 어우러지는 종합예술적 성격을 내세웠다.
그러나 '청의 눈물'은 무용극이라는 데 초점을 맞춰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이날 무대에서 가장 돋보였던 것은 '청'도, '심봉사'도 아닌, 도창을 맡은 소리꾼 윤진철이었다는 점이다. 무용극에서 그 어떤 무용수보다도 소리꾼의 활약이 도드라졌다는 것부터가 씁쓸하지만, '심봉사'가 '청'을 만나 눈뜨는 대목에서 조차 '청'이는 아버지를 찾지 못하고 '심봉사'는 눈을 뜨지 못한 채였다. 소리와 춤이 따로 노는 상황에서 객석은 어리둥절할 수 밖에 없었다. 제작진의 고도의 계산이 깔려져 있던 것이 아니라면, 공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이라도 문제제기를 할 수 밖에 없는 장면이었다.
또 춤을 추고 있는 무용수들 사이로 세트가 내려오거나 무용수들끼리의 동선이 어긋나고 호흡이 맞지 않는 등 전체적으로 조화란 단어를 붙이기에는 아쉬움이 많았다.
한국춤의 절제와는 조금 다르지만, 자유로움과 자연스러움이 살아있는 안무는 대중들의 눈을 즐겁게 했고, 무대와 객석을 연결시켜 춤의 공간을 확장한 것 또한 공연을 즐겁게 했지만 분명 '청의 눈물'에서 한국의 춤을 느끼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너무나 많은 장치를 동원한 점도 아쉬웠다. 치장에 지나치게 신경쓰다 본질을 잊은 것이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청의 눈물'은 막을 내렸지만, 정공법이 더 마음에 와닿을 수 있다는 생각은 사라지지 않는다. 의미있는 시도가 실험이 아닌, 성과로 이어지기에는 많은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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