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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나 모르는 문화이야기] (34)거리의 예술 그래피티 아트

칙칙한 도시에 예술을 입히다

전북대 구정문 주차장 벽에 그려진 그래피티. ([email protected])

"모르니까 아무 말도 안하죠. 도대체 언제 와서 그려놓고 가는지…. 그림도 자주 바뀌어요."

 

전북대 구정문 건너편에 위치한 주차장. 주차장 벽에 그려진 그림들을 보며, 주차장 안내원은 "밤이나 새벽에 작업을 하는 건지 그림 그리는 사람들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며 "출근하고 보면 새로운 그림이 그려져 있곤 한다"고 말했다.

 

벽화하면 떠오르는 서정적인 그림과는 거리가 먼 그림들은 '그래피티 아트(graffiti art)'다. '낙서'로 평가절하되기도 하지만, 개인적 혹은 사회적인 메시지가 담긴 의미있는 그림이다.

 

'2008 전주국제영화제'에 초대된 그래피티 퍼포먼스팀 'ANFG'의 한 멤버가 영화의 거리에서 라이브 페인팅을 선보이고 있다. ([email protected])

그래피티 아트란 벽이나 그밖의 화면에 낙서처럼 긁거나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해 그리는 그림을 가리킨다.

 

그래피티가 예술로 등장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본격화된 것은 1960년대 말부터였다. 미국 할렘가를 중심으로 파생된 힙합문화 중 하나였던 그래피티는 주로 반항적 청소년들과 소수민족들이 주도했다. 이들은 분무 페인트를 이용해 극채색과 격렬한 에너지를 지닌, 속도감있고 도안화된 문자들을 거리의 벽에 그렸다. 즉흥적이고 충동적이지만, 상상력이 넘치는 것들. 장 미셸 바스키아와 케이트 해링은 흑인영웅, 죽음, 에이즈 퇴치, 인종차별 반대, 핵전쟁에 대한 공포 등을 담아 도시의 골칫거리였던 그래피티를 현대미술로 자리잡게 했다.

 

이미 유럽에서는 거리 예술로 자리잡은 그래피티는 국내에서도 각종 문화행사나 영화, 광고의 배경작업에 쓰이고 있다.

 

그러나 지역에서는 상대적으로 그래피티에 대한 이해가 적은 편. 전북에서 그래피티가 예술로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그래피티 작가 김서화씨가 처음으로 전북에서 그래피티 전시회를 연 2007년으로 볼 수 있다.

 

전주에 거주하고 있지만 1999년 서태지 컴백무대 그래피티를 비롯해 영화와 CF, 드라마에 사용되는 그래피티 작업을 해 온 김씨는 이미 그래피티 분야에서는 유명한 작가. 그는 주로 건물 벽을 캔버스 삼다 보니 특성상 실내공간으로 들어오기에는 한계가 있었던 그래피티를 전시장으로 들여오는 데 성공했다. 그는 같은 해 서울작가들과 전주에서 전시를 열고 라이브 페인팅을 통해 그래피티의 생생한 현장감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래피티를 처음 할 때 가장 당황스러운 것은 락카 스프레이 조절법. 락카 스프레이를 뿌리고 나면 벽면을 타고 주루룩 흘러내릴 뿐만 아니라 선의 두께 조절이 힘들다. 그래피티 전용 락카나 노즐이 없기 때문에 그래피티 작가들은 노즐을 손가락 힘으로 조절해 선의 굵기 등을 조절해 그린다.

 

그래피티는 다른 도구를 이용해 그리는 것보다 빠른 속도로 순간순간의 아이디어를 바로 표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락카 스프레이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표현하려면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많은 젊은이들이 그래피티의 매력에 빠져있지만, 사실 한국에서 그래피티는 건물주가 동의한 것 이외에는 아직 불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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