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트인, 진실로, 김배짱…진짜 이름 맞습니다
9일은 562돌을 맞는 한글날. 이 날 만큼은 꼭 주인공이 되는 사람들이 있다. 남들보다 독특한 이름으로 한 번 들으면 쉽게 잊혀지지 않는 순수한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다.
어렸을 적에는 놀림을 받아 한글 이름이 부끄럽기도 했지만, 이제는 가장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이름으로 꼽는다.
김배짱, 김맷돌, 동그라미, 이 빛, 임회오리, 김소르르, 이즈리, 진실로, 김으뜸, 유빛나, 탁트인, 이루내…. 부르기도 좋고, 뜻도 야물다.
주변에 예쁜 한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을 취재해보니 유난히 20대가 많다. 이름도 유행이어서 한글이름이 한창 관심을 모을때가 있었다. 그 세대에 태어나 한글 이름을 얻은 20대 젊은이들을 만나보니 사연도 많고 웃음도 크다. 한글날이면 그들이 더 행복하고 신나는 이유를 들었다.
"정직하고 진실하게 살아야 할 운명"
▲ 진실로씨(24·전주시 인후동)
"진실하게 살라는 뜻으로 붙여주셨으니 진실하게 살아야죠. 제 이름요? 200% 만족해요."
작은 아버지가 이름을 지어주었다는 진실로씨(24).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덕에 '진실'을 강조하는 한글 이름을 얻었다.
독특한 이름때문에 출석을 부르면 모든 시선을 한 눈에 받고, 어린시절에는 짓궂은 친구들이 성경책을 읽어보라고 놀리기도 했다. 그러나 한번 들으면 잊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이름이 예쁘다'는 소리도 많이 듣는다.
이름이 주는 부담이 크다는 그는 "거짓으로 살면 이름값도 못하게 되니, 진실하게 살수 밖에 없는 운명"이라며 웃는다. 어렸을때는 좀더 근사한 이름을 가졌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이름을 갖게 된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그의 별명은 '거짓말쟁이'. 친구들 사이에서는 '진짜로'로 불리기도 한다. '정직하고 진실하게 삶을 사는 뜻의 이름처럼 실천하고 행동하기.'그의 좌우명이다.
"모든 것을 잘 이룰 수 밖에 없어요."
▲ 이루내씨(25·성균관대 교육대학원)
한글 이름은 우선 그 뜻을 알기 쉽다. 대학원생인 이루내씨(25)도 부모님이 '모든 것을 이루어 내라'는 의미를 담아 지어준 이름이다.
'루내'란 발음이 어려워 뜻보다 발음을 가르쳐 주는 일이 더 많다는 이씨는 '통일을 이루자∼'라는 끝 소절 때문에 초등학교 때는 '우리의 소원' 이라는 통일 기원 노래가 늘 따라다녔단다. 학교나 학원에서 시험 문제를 틀리면 '이것도 못 이루내' 라는 놀림을 받아야 했다.
출석을 부를때는 어김없이 한번 더 이름이 불리워지며 관심을 받기도 하지만, 다른 학생이 출석을 대신해주는 '대리출석'은 절대 통하지 않는다.
이루어 낸다는 의미를 가진 이름이 곧 삶의 목표가 되기도 해 그에게 이름 '이루내'는 특별하다.
"한자이름은 뜻이 숨어 있어 무슨 의미인지 설명하지 않으면 알 수 없지만 한글 이름은 뜻을 바로 알 수 있어 좋다"고 말한다.
"어른들이 '부르는 대로 된다'고 하시죠. 저는 모든 것을 잘 이룰 수 밖에 없어요." 그의 말에 고개 끄덕여졌다.
"나쁜 일은 잊고 좋은 일은 오래오래 기억하세요"
▲ 이즈리씨(22·전주시 중노송동)
"좋은 일은 기억하고 나쁜 일은 제 이름처럼 잊으세요."이름을 물어보니 곧바로 되돌아온 답이다.
아버지가 '인생을 살면서 수 없이 많은 일이 있지만, 좋지 않은 일은 빨리 잊어버리고 새롭게 도약해라' 뜻으로 이름을 지어주었다는 이즈리씨(22).
초등학교 시절 한창 주가를 올렸던 '립스틱 짙게 바르고'의 가사 '내일은 잊으리 또 잊으리 립스틱 짙게 바르고'때문에, 또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과자 '죠리퐁'때문에 눈물나도록 놀림 받았었다는 이씨는 그러나 지금은 정반대. "자기만의 개성시대, 특별함을 추구하는 시대에 딱 맞는 이름"이라고 자랑스러워한다. 물론 독특한 한글 이름 덕에 에피소드가 적지 않다.
언젠가 포털사이트 카페에 등업신청을 요청했다. 관리자답이 올라왔다. '등업신청은 실명만 가능합니다.'"실명을 확인시키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했어요."
인터뷰 내내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가능한 긍정적으로 세상을 본다는 그는 이름 덕분에 스스로를 특별하고 소중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어쩐지 제 인생은 탁트일 것 같은 확신이 들어요"
▲ 탁트인씨(21·익산시 동산동)
"제 이름을 듣는 모든 사람은 막힌 가슴이 뚫리고 시원하다고 말해요."
부모님이 아닌 고모부로부터 이름을 받았다는 탁트인씨(21). "가슴을 활짝 펴고 당당하게, 인생에서 시련과 어려움 없이 탁 트이게 살라" 뜻으로 지어졌다.
초등학교 시절 그 당시 유행하던 '포켓몬스터' 만화 속에 나오는 '닭 트리오' 이름과 흡사해 많은 놀림을 받았다. 그러나 중고등학교때는 자신이 이름이 남들보다 예쁘고 독특해 이름표를 가능한 붙이고 다녔다는 그는 "이름을 듣는 사람들은 '힘이 생긴다'고 말할때 스스로도 기쁘다"고 말한다. 쉽게 잊어버릴 수 없는 이름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호감을 가져주는 것 같다는 그는 '이름이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독특한 이름이 있으니 특별한 별명이 필요 없을법한데도 나름대로 재미난 별칭이 있다. 그것도 이름과 연관된 것들. 친구들은 그를 '투(two)', '탁'으로 간단하게 부른다.
"올해 스물한 살, 앞으로 도전해보고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요. 근데 왠지 제 이름처럼 모든 일이 고속도로처럼 탁 트일 것 같아요."
"여자만 빛나나요? 남자도 빛납니다"
▲ 유빛나씨(25· 전북대 사학과)
"밑받침 'ㅊ'이 어려워 처음 만난 사람들은 거의 '빈나'로 알아요. 대개 'ㄴ' 'ㅈ' 'ㅊ' 순서로 이해하던데요."
유빛나씨(25) 삼남매는 아버지가 '샛별이 하늘에서 빛난다'는 의미로 지어준 이름을 갖고 있다. '유샛별' '유하늘'이란 이름을 가진 두 누나에 이어 막내로 태어난 그는 외동아들 임에도 '빛나'란 이름을 갖게 됐다. 어렸을 적 별명도 화려하다. '빛나리' '형광등'. 별명도 '빛나'라는 의미를 담아 붙여졌다.
유씨는 "한글 이름이 많아지면서 이제는 이름이 특이해서 놀라기 보다 남자라는 사실에 더 놀란다"고 소개했다.
학창시절 새학기 수업에서 첫번째 질문은 무조건 유씨의 몫. 어느 시점이 지나서는 첫 질문을 예상해 준비도 알아서 했단다. 그는 "한번만 잘못해도 이름을 기억하는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눈에 어긋날 짓은 엄두도 못냈다"고 말했다.
"한글 이름이 확실히 좋은 것 같아요. 요즘은 뭐든지 많이 알려야 하는데, 사람들이 더 잘 기억해 주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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