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일반기사

[독자 백가쟁명] 작은 도서관과 밤샘 독서 - 박규선

박규선(전라북도교육위원회 의장)

우리가 아는 하버드 대학의 도서관 입구는 움푹 패여 있다고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며, 그 속에서 행복을 얻어갔을까 짐작이 간다. 이렇게 보면 하버드의 명성은 도서관에 있는 것 같다. 이를 뒷받침하듯 현대의 진정한 대학은 도서관이라고 칼라일은 설파했다.

 

대학에나 있던 도서관이 생활 속으로 파고드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옛날 소수만이 책을 가까이 하던 때가 이제는 모두가 책을 가까이 하는 시대가 되었다. 책을 가까이 할 수 있다는 면에서 현대인은 모두가 귀족이고 모두가 선비이며 모두가 학자이다. 도서관이 진정한 대학의 모습이라면 도서관을 드나드는 모두가 평생 대학생이며 조선의 선비인 셈이다. 초등학생일지라도 대학생의 모습인 것이다. 대학을 다니고 싶어 했던 세대들이 꿈꾸던 세상이 펼쳐지고 있다.

 

도서관은 사람을 만나는 곳이다. 책으로 저자와 만나고, 책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만나는 장소이다. 책 속의 저자와 조용히 대화를 하는 곳이다. 책의 저자는 이름난 사람이어서 바쁜 사람들일 텐데 그들이 언제 우리와 만나 줄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들을 우리가 마음껏 선택하고 마주할 수 있는 공간, 그것이 도서관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자료가 서가에 꽂히는 도서관은 문화를 전수하고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는 아이디어의 보배로운 창고이다. 그러나 집에서 거리가 멀고 사람을 압도하는 거대한 도서관보다는 가까이에 있어서 언제든지 쉽게 갈 수 있는 작은 도서관이 필요하다.

 

작은 도서관을 여기저기 많이 만들어야 한다. 공간이 넓지 않아도 된다. 그냥 주민들이 원하는 책을 준비하면 훌륭한 도서관이 된다. 집에서 가까워서 사랑방처럼 드나들 수 있는 공간, 그리고 저녁을 먹고 산책을 하다가 들를 수 있는 도서관이 작은 도서관이다.

 

작은 도서관은 책을 읽다가 이웃을 만나 정담을 나눌 기회를 만든다. 아이들의 학교 숙제를 위해 들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신문으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얻을 수 있는 곳이며, 각종 전문 잡지를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곳이다. 가족이 함께 가벼운 차림으로 머리를 식힐 수 있는 곳이어야 하며, 책을 읽다가 책을 빌려올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새로 들어온 자료로 신선함을 주어야 하며, 지역 공동체를 위한 정보를 서비스하는 곳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엄마나 아빠와 책장을 함께 넘기고 공동생활 공간의 예절도 배우면서 시간을 함께 하는 일이 행복이 된다. 쉴 수 있는 공간에서 옛날의 전기수처럼 아이들을 모아놓고 옛날이야기를 하면 눈알이 초롱초롱한 아이들과 함께 자신의 이야기에 빠지는 할아버지나 할머니는 얼마나 행복할까!

 

각 지역의 도서관 역시 작은 도서관이다. 이를 정비하여 훈훈함이 넘치는 공간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한 방에서는 교양 강좌가 열리고 또 다른 방에서는 책읽는 모임으로 향기가 넘쳐나야 한다. 책을 읽고 소박하게 자신의 의견을 교환하거나 아니면 좀더 깊이 토론을 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책을 읽고 뭔가를 쓰는 모습 또한 우아함이 넘친다. 이처럼 도서관이 다양한 활동이 일어나는 곳으로 거듭나야 한다.

 

더 넓게는 책으로 만나는 장소를 작은 도서관으로 만들어야 한다. 책을 읽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나면 그곳이 바로 작은 도서관이다. 커피숍이나 학교 운동장 구석이나 시민 공원의 벤치는 분위기 넘치는 도서관이다. 모두가 책을 들고 책을 읽고 책을 이야기하고 책 속의 내용에 빠질 때 그곳은 모두가 작은 도서관이 된다.

 

작은 도서관은 밤샘 독서 축제도 가능하다. 책읽기운동 전북본부에서는 작은 도서관 만들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그 행사의 하나로 시월의 마지막 밤을 밤샘독서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천년 고찰 금산사에서 책을 읽다가 음악도 듣고, 눈이 침침할 때쯤이면 책의 저자도 모셔다가 이야기도 들으면서 졸리면 한잠 자다가 다시 일어나 궁금한 책 내용을 다시 이어나가는 행사이다.

 

우리네 조상들은 가장 아름다운 소리가 책 읽는 소리라고 했다. 책 읽는 모습으로 불빛이 넘쳐나는 세상, 곳곳에 작은 도서관을 만들어 가는 번뜩이는 지혜가 가을의 결실로 차곡차곡 채워지는 세상을 소망해 본다. 여기 저기 널려 있고 늘 열려 있는 작은 도서관, 그것이 바로 문화의 힘이기 때문이다.

 

/박규선(전라북도교육위원회 의장)

 

전북일보
다른기사보기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100
최신뉴스

국회·정당연말 정국 혼란⋯"전북 예산 감액 우려"

국회·정당자치단체 에너지분권 경쟁 '과열'⋯전북도 움직임 '미미'

정치일반전북-강원, 상생협력 강화…“특별자치도 성공 함께 만든다”

정치일반새만금, 아시아 관광·MICE 중심지로 도약한다

자치·의회전북특별자치도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북자치도 및 도교육청 예산안 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