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성(본보 기획사업국장 겸 논설위원)
가을축제가 막을 내렸다. 그 많던 축제 가운데 눈에 뜨인 것은 다문화 가정에 관련된 행사의 증가다. 각 기관과 단체에서 마련한 이들 프로그램에는 결혼이민자와 외국인 근로자 등이 모양과 색깔로 자리를 채웠다. 외국계 결혼이주자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는 것은 누구나 목격하고 실감하는 현실이다. 다양성을 향한 첫 걸음이 시작된 것이다. 나는 이번 '세상만사'에서 우리사회에서 다양성이란 말이 문화적 아이콘으로 등장하면서 부딪치는 다문화 가정에 대해 말해보고 싶다.
다문화 가정이 늘어나면서 급격히 다문화 사회로 변모하고 있다. 국내 체류 외국인이 이미 100만 명을 넘었다. 도내 국제결혼이주여성의 경우 올 4월말 현재 4천812명이다. 이들 자녀는 4천283명으로 경기 서울 전남에 이어 많다. 전북지역은 상대적으로 외국인 근로자보다 농산어촌의 국제결혼 증가로 그 자녀가 타시도보다 급속히 늘어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저출산 문제를 푸는데 큰 몫을 해내는 셈이다.
하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그 여파가 만만치 않다.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자료와 교육과학기술부 학생현황 자료에 따르면 도내 다문화 가정에서 고등학교에 다니지 않는 학령기 청소년이 무려 82.9%로 드러났다. 다문화 가정의 부부폭력 발생률 또한 일반적인 부부보다 7.4%포인트 높게 나타난 여성부의 조사내용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런 현상을 보는 우리의 오해와 편견이다. 이들 결혼이주여성 상당수가 저임금, 저개발 국가 출신이기 때문에 부정적인 측면을 보는 경향이 적지 않다. 과장된 시각도 문제다. 다문화 가정을 바라보는 시각은 이중적이다. 한편에선 일정한 한계를 넘어선 변화는 수용을 꺼리거나, 서로의 차이를 좁히려는 노력이 아직 미흡하다고 보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글로벌한 시대에 다양성은 거스를 수 없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다문화 가정에 대한 내 생각은 이렇다. 기존의 우리 사회에 일방적인 동화주의 관점에서 벗어나, 여러 국가에서 온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지닌 이주민의 문화적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다양성의 가치를 존중하는 정책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그들이 우리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인식전환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눈물짜는 불쌍한 존재가 아니라 우리 것을 반절 내놓을 테니까 당신들도 반절은 보여 달라는 공평한 다문화 사회구조를 촉구한다.
그동안 우리의 다문화 가정에 대한 정책은 대부분 우리 문화를 가르치는, 억누르는 프로그램이 대부분이었다. 이것은 문화의 폭력이다. 우리 문화가 중요하듯이 그들의 문화도 분명 존중돼야 한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다문화 가정을 지켜낼 이러한 사회적 공감이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1964년12월 노르웨이 오슬로 노벨평화상 수상 강연에서 "우리는 상호관계라는 벗어날 수 없는 그물에 걸려 있으며, 운명이라는 한 벌의 옷으로 엮여 있다. 모든 삶은 서로 관련이 있는 것"이라며 인간 통합에 관한 인상적인 관념을 드러냈다. 지금 우리는 우리사회 내부에서 발현된 다양성과 거대한 흐름으로서 세계화가 몰고 온 다양성이 만나고 충돌하는 시공간에 서 있다. 누가 선택을 강요할 수 있는가. 일방적인 사회적 통합은 문제가 있다. 다문화 가정이 더 이상 정체성 혼란에 시달리게 해서는 안된다.
/최동성(본보 기획사업국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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