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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화로 세상을 바꾸고 싶었죠"

전북일보·환경운동연합 '초록시민강좌' 판화가 이철수씨

지난 18일 전주 평생학습센터에서 열린 2008초록시민강좌 일곱번째 강연에서 판화가 이철수씨가 강연하고 있다. 이강민([email protected])

"70년대, 당시 군부독재가 오랫동안 이어지던 시절이었는데, 민중문학이라고 세상에 책임을 느끼는 문학의 목소리는 있는데 왜 미술의 목소리는 없는가라는 고민을 했었습니다. 그 때 판화가 민주적인 장르라는 생각이 들었죠."

 

우연히 '현실과 발언'이란 그룹의 전시를 보게 됐고, 민중미술을 알게 됐다.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열망이 컸던 시절, 판화라는 장르가 가진 내재율이 보였다. 도구로서의 쓰임이 먼저 들어왔었지만, 하다 보니 섬세하면서도 완강하고 폭이 넓은 무한한 세계가 보였다. 판화가 이철수씨(54)는 "결국 판화를 마음을 담는 그릇으로 쓰기로 작정했다"고 말했다.

 

전북일보와 전북환경운동연합이 공동주최한 2008 초록시민강좌 '자연이 내게로 왔다' 일곱번째 강연이 18일 오후 7시30분 전주평생학습센터에서 열렸다. '밥 한그릇의 행복, 물 한그릇의 기쁨'을 주제로 한 이날 강연에는 한 때 민중판화가로 이름을 떨치다 자기성찰과 생명의 본질에 대한 관심으로 판화의 영역을 확장해 가고 있는 판화가 이철수씨가 초대됐다.

 

"처음에는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판화에 색깔까지 칠하는 것은 생각조차 못했죠. 그 때는 목소리를 크게 낼 필요가 있었고 채색 보다는 판화의 거친 표현에 기대어 울분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조금씩 판화에 대해 더 이해할 수 있게 됐고, 우리 안에 분노도 있지만 잔잔한 수면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씨는 "자꾸 맹물에 가까워지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지만, 목 마를 때는 맹물이 제일 낫다"며 뼈있는 농담을 건넸다.

 

그는 스무번은 사업에 실패한 듯한 아버지와 그럴 때면 골동품이나 서화를 싸들고 나가서 팔았던 어머니에 대한 기억도 털어놓았다. 무명으로 독학하며 그림을 그리던 시절, 아버지에 관한 미움이 너무 많아 주체할 수가 없었다는 그는 아버지가 5·16이란 역사의 수레바퀴에 치인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되면서 비로소 아버지와 화해할 수 있었다고 했다.

 

"저는 판화하는 사람인데 공부 삼아 농사도 짓습니다. 농사일을 하다 해그림자가 길게 드리울 때면 마음 속에 가득 차오르는 느낌이 있어요. 한 30년 판화쟁이로 살면서 내가 왜 그림 그리면서는 그만한 기쁨을 느끼지 못했는가라는 생각이 드는데, 결론은 간단하더군요. 그림에는 욕심이 있고, 순수하게 하는 노동에는 욕심이 없었던 겁니다."

 

그는 "많은 분들이 내 그림을 좋아해 주는데, 그건 이미 그분들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던 것들이 공명하는 거라고 생각한다"며 "내 그림을 보고 공감한다면, 내 삶에도 이런 구석들이 있었구나라는 생각으로 자신과 주변의 삶을 돌아봐 달라"고 당부했다.

 

이날 강연에는 부부 클라리네티스트 이철경씨와 김길주씨가 부드러운 클라리넷 연주로 첫눈 오는 날의 서정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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