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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과 사람] "20여년전엔 여치 할아버지로 통했죠"

곤충 소재 동시·동화, 그림도 손수 그렸던 서병윤씨

서병윤 할아버지 거실 책꽂이에는 「파브르곤충기」가 몇 권 꽂혀져 있었다. 옆에 있던 일본어로 된 책 역시 곤충에 관한 것이었다. (서병윤 할아버지는 전주에서 태어나 전주에서 초등학교를 다녔지만, 일제시대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에서 중학교를 다녔었다. 덕분에 일본어는 일본인과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는 정도라고 했다.)

 

지금이야 '시계 할아버지'로 유명하지만, 20여년 전만 해도 '여치 할아버지'로 불렸었다.

 

젊은 시절 중장비 사업을 했지만 나이가 들어서는 가족들을 전주에 두고 혼자 임실 옥정호 안에 있는 섬에 들어가 양봉을 했다.

 

우연히 듣게 된 여치 울음소리가 좋아 한 마리 두마리 키우기 시작한 게 2000마리가 됐다. 나중에는 전주시 인후동 야산을 빌려 8000마리 이상으로 여치 숫자를 늘려갔다.

 

여치를 혼자 보기 아까워 차에 싣고 서울 세종로에 가지고 가서 팔았다. 성냥개비로 여치집을 만들고 그 속에 한마리씩 넣어 1000원씩 팔았더니 금방 트럭 한 차 분이 동이 났다.

 

곤충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은 90년대 초반에 만든 '달력책'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1992년도 달력 뒷면에 할아버지가 손수 그린 그림들은 다름 아닌 곤충들의 한살이나 곤충들을 소재로 한 동시·동화, 곤충들을 비교해 놓은 생태도감이었다. 특히 그가 지은 '곤충 헌장'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도 지구촌에서 생존할 권리가 있다' '우리 목숨은 하나밖에 없다' '농약을 함부로 살포하지 말라' 등 곤충들의 절박한 목소리.

 

할아버지는 지금도 여치를 기르고 싶은 마음이 크다고 했다. 누가 콘테이너 박스를 판다길래 관심있게 보고 있다. 하지만 오염된 도시에서 여치를 기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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