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은 첫사랑과 비슷합니다. 우리같은 사람은 한번 씌이면 '올인'합니다. 그것밖에 몰라요."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고 연극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로부터 30여년. 퇴직금도 다 쏟아 날려 봤고, 뜻대로 되지 않아 가까스로 문을 열었다가 닫기도 여러 번. 같이 하던 식구들이 하나 둘 떠나 이별의 부두가 되어 버린 '부두 연극단' 도 마찬가지다. 죽어도 좋다는 그 연극 때문에 가족은 뒷전이 되서 늘 미안한 마음 뿐이지만, 좋은 걸 어쩌랴.
첫사랑이 남기고 간 그 알싸함이 없으면 헛헛해 살지 못하겠다는 이성규 엑터스 소극장 대표(59)다.
그가 올리는 작품은 애시당초 대중들의 폭넓은 공감을 얻기엔 한계가 있었다. 부조리극·마임 등 내용과 형식면에서 문제작이거나 실험성이 짙은 작품을 무대에 올려왔다.
"연극 시작할 때 언제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이야기는 재미가 없으니 색다른 걸 해보자는 게 제 철학이었어요. 존재론적인 질문을 던지는 그런 작품을 소극장 아니면 어디서 보겠습니까."
그의 생각, 방향, 느낌까지 다 맞는 작품을 고르기는 그래서 어렵다. 번역극 위주로 작품을 올리게 되는 것은 비교적 텍스트가 완벽한 작품들이기 때문. 배우들의 연기력을 끌어내는데 연출가의 공이 요구되긴 하지만 말이다.
물론 배우들에게도 까다로웠다. 이른 새벽부터 밤까지 배우들이 몰입해서 극에 도전하고 소화하도록 했기 때문에 배우들이 무서워하기도 했다. 대사 한 마디 한 마디를 파고 들게 하려다 보니, 장면의 배경·의미 등을 설명하느라 연출가인 자신이 반쯤 배우가 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덕분에 배우들은 작품 해석능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고, 중앙에서 이름을 날리며 큰 배우로 성장한 이들도 여럿 있다.
"요즘 얘들은 저항력이 없는 것 같습니다. 끝까지 뭔가 해보겠다는 그런 맛이 없어요. 배우 트레이닝을 시키고 싶어도 못 견뎌하기 때문에 못 하죠. 하나 둘씩 떠나면 처음엔 상처도 많이 받았는데, 이제는 가면 가려니 오면 오려니 합니다."
작품이 다르고, 성격도 다른데, 배우가 없어 늘 같은 배우가 고만고만한 연기로 무대에 올라가는 것도 그의 성에 차지 않는 대목. 심연을 깊게 파고 들어가지 못하고 표면만 부유하지만, 하루 아침에 쌓이는 내공이 아니기에 묵묵히 지켜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직도 전통 있고 실험성 짙은 작품을 올려야 한다고 고집한다. 어떤 실험적이고, 작품다운 작품이냐고 질문엔 논의를 통해 그 본질을 찾아가야 한다고 설명한다. 다만 그는 서울의 무한경쟁 체제로 돌아가는 소극장은 연극의 본질을 흐리는 곳이라고 강조한다. 순식간에 스타가 돼서 '대박'을 터뜨려야 할 것 같은 조급증만 양산해 놓았다는 것.
"연극은 돈이 안 벌리는 게 숙명이에요. 작품을 올려 얻어진 수익금은 함께 나누는 게 연극입니다. 그래서 가족공동체 형태로 갈 수 밖에 없고, 일확천금을 벌 수가 없는 겁니다. 대신 담백하게 사는 법을 배우죠. 그게 얼마나 좋은지 요즘 얘들은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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