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구씨 장편 '왕롱의 잔'
28년간 깜깜한 세상 때문에 눈을 뜨고 감았던 수많은 이들을 지켜봐왔다.
군산 안과 전문의 1호로 '잘 나가는' 삶을 살았지만, 친구의 죽음을 맞닥뜨리자, 그 역시 자신의 삶이 광야인 것을 발견했다. 황폐함과 외로움, 목마름이 있는 자신의 삶의 내면을 밝혀줄 무엇인가 필요했던 것.
그에게 다가온 구원의 손길은 바로 글쓰기였다. 98년 처음 장편소설 「동역자」를 시도해 운좋게 성의문화상을 탔다. 「오발탄」 의 작가 고 이범선씨가 "앞으로 글 쓸 사람 같다"고 했다. 예감은 적중했다.
이선구씨(53·군산안과 원장)가 이번에 펴낸 책은 장편소설 「왕롱의 잔」이다. '왕롱의 잔'은 주인공인 똑똑한 신문 기자 왕롱이 마시게 될 쓴 잔을 뜻한다. 잘났다고 여기며 살고있는 우리가 마시게 될 쓴 잔이기도 하고, 그리스도가 마셨던 잔을 뜻하기도 한다. 그는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 때문에 신이 창조한 우주적인 질서가 파괴되는 것을 꼬집으며, 과학의 힘이 신의 뜻인 사랑을 위해 쓰여져야 한다는 것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신의 사랑, 진부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주제죠. 지나치게 자극적인 소재에 길들여져 있는 현대인들에게 더욱 그렇습니다."
100년 후 미래사회가 직면하게 될 문제점을 풍자적으로 비판해야 했기 때문에 판타지 형식을 빌렸다. 화자와 요한의 움직임을 취재하는 신문기자의 눈을 통해 첨단과학이 발전한 미래사회의 병리적인 현상을 지적하고, 예언자 요한과 복제인간이자 그의 사랑하는 사람인 죠수아의 순례 및 세례의식, 회개운동을 복음의 의미를 담아 전개한 점도 이 작품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장치다.
"'왕롱의 잔'이 '지금 왔다'고 하면 독자들로부터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여겼습니다. 100년 후라고 한다면, '아, 이제 준비 좀 해볼까' 혹은 '그럴 법도 하다'라고 여기지 않을까요."
하지만 이 책은 그의 전반부에 불과하고, 재판과 희생에 관한 뒷부분은 준비중에 있다.
"온통 금기로 가득찬 세상을 살면서 이런 주제와 스토리를 꼭 쓰고 싶었는데 오랜 숙원을 이제야 푼 것 같습니다. 준비하고 있는 또 다른 장편소설은 이준 열사 이야기인데, 글쓰기에 대한 욕심조차도 버리지 못하는 것을 보면, 철들기는 아직 멀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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