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몰이 갈 때는 '어이' '어이' 해주세요. 표정이 '노가대' 뛰는 사람 같아. 일그러졌어."
"어젠 울고 싶었어요. 스무 번도 더 틀렸어요. 그래도 오늘은 열 번이네."
전주 팔복동 한 켠 허름한 건물에서 밤 늦도록 흥겨운 가락이 계속됐다. 꽹과리 장구 징 북이 한데 뒤엉켜 거칠지만 묘한 화음을 이루며, 신명을 이어갔다.
아마추어 풍물패인 '일터 풍물마당'. 88년 공단 인근 일터교회에서 마음 맞는 몇 명이 모여 꾸렸다. 노동자들의 문화공간이 거의 없었던 시절이라 풍물만 한다고 해도 '빨갱이' 취급을 받던 스산한 분위기였다. 전통문화를 살리자는 거창한 구호를 대지 않아도 고된 일상을 풀고 싶은 욕구는 당연한 것.
90년대 후반 흐지부지됐던 이들의 대오가 지난해 다시 결성됐다. 호남 좌도굿에 바탕을 두고, 사물놀이만 모았다. 지난 20일 첫 공연은 각오를 새롭게 다진 자리.
장두종 회장(43)이 총대를 메고 30여명의 회원들을 모았다. 카센터, 기계 부품조립 공장에서 근무하는 사람들도 있고, 자영업자, 가정주부까지 참여했다. 배우겠다는 의지와 무조건 열심히 하겠다는 단순무식한 '단무지' 정신으로 무장됐다고 하니, 연습 부족으로 낙오됐다는 박정하(41)씨를 보면 허투루 나오는 말은 아니다.
20년 전 처녀·총각으로 만났던 이들이 이젠 다 제 짝을 찾아 보금자리를 일궜다. 지원 하나 받지 않고 열정 하나로 뭉쳐 연습하는 것을 보면 좋아하지 않고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김명곤 부회장(43)은 "그간 누르느라 애썼는데, 이제서야 비로소 내면의 숨어있는 끼가 발산됐다"고 말했다. 아마추어이기에 이들을 이끄는 선생도 필요해 총무 박성우씨(37)의 지기인 김종균(37·도립국악원 단원)씨가 이들의 소리를 지도하고 있다.
"온몸이 노곤노곤 해질때까지 풍물판에 자신이 녹아나면 그보다 더 좋은 건 없죠. 지금은 악기와 친해져가고 있는 상태에요."
현재 연습실은 각자 주머니를 털어내 빌린 공간. 지하에 있다가 같은 건물 2층으로 새단장해 옮겼다. 새단장이라고 해봤자 집에서 안 쓰는 이불을 가져와 창틈과 문틈 사이를 막고, 구해온 계란판으로 천장을 도배해 소리가 밖으로 많이 새나가지 않도록 신경쓴 게 전부. 학교 체육관에서 쓰다 만 중고 매트로 바닥을 깔아 오랫동안 앉아 연습해도 엉덩이가 아프지 않게 했다. 퇴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우리만의 연습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손수 꾸린 곳이다.
그렇게 방음에 신경을 썼건만, 공연을 앞두고 계속 쳐댔더니 주변 민원이 계속됐다.
"그 집엔 떡을 안 돌렸는가 보다" 며 서로 우스갯소리를 주고 받는다.
이들의 소망은 동네 어르신들을 끌어내 푸진 판을 벌이는 것. 풍물패를 따라다니거나 아버지나 삼촌 어깨에 올라가 목마 타면서 눈으로 배운 춤과 악기가 함께 어울렸던 우리네 문화 원형을 찾고 싶다.
여력이 된다면, 맞벌이 부부 자녀들을 위한 문화공부방도 마련해주고도 싶다. 경제적으로 어려워 문화혜택을 못 받는 아이들에게 신명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기 때문.
세련되진 않아도, 함께 놀고 즐기는 멋과 재미에 빠져든 이들의 입에선 탄성이 절로 난다.
"역시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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