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재(본지 경영지원국장)
'위기를 기회로' '이젠 힘을 모을 때'
대통령이나 정치권, 사회지도층 모두가 희망과 용기를 갖고 힘을 모으자고 화두를 던지고 있다. 경제불황의 그림자가 새해에도 길게 드리워질 것이란 전망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난해 새해는 경제의 고수, CEO 출신이 국가를 경영하면 뭔가 확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두려움이 억누르고 있다. 불과 1년 사이에 새해를 맞는 심정적 차이가 이렇게도 다를까.
이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일 때 제시했던 '시화연풍'(時和年豊)이란 사자성어도 1년 만에 그 반대의 의미를 담고 있는 '부위정경'(扶危定傾)으로 바뀌었다. '나라가 태평하고 해마다 풍년이 든다'는 뜻에서 이젠 '위기를 바로잡고 나라를 바로 세운다'는 의미로, 거꾸로 간 꼴이다.
고·소·영인사, 강부자 내각, 촛불, 고유가, 고환율, 펀드, 자살, 대운하, 종부세, 전기톱과 쇠줄…. 지난해 우리의 머리속을 지배했던 상징적 단어들이다. 지난해는 특히 경제적· 사회적 약자들에게 힘든 해였다. 10명중 5곳이 적자가계를 꾸렸고 2명중 한명 꼴로 주식이나 펀드로 커다란 손실을 입었다. 중소기업에겐 흑자도산의 위험까지 넘실거렸고 젊은이들은 일자리 때문에 지금도 고통을 겪고 있다.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경제 하나 만큼은 확실히 살릴 것이란 기대를 안고 탄생한 이명박정부에서 경제팀이 낙제점을 받은 것도 아이러니다. 경실연이 경제· 경영분야 전공 교수와 경제전문가 82명을 대상으로 이명박정부 경제팀의 업무수행 능력에 대해 설문조사를 벌였더니 5점 만점에 1.92점이 나왔다. 낡은 사고와 시대착오적 발상, 잘못된 정책, 신뢰상실이 부정적으로 평가된 주된 이유다.
신뢰를 얻지 못하면 백약이 무효다(無信不立). '주식이 3000 포인트까지 갈 것' '747(7% 경제성장, 4만달러 소득, 세계 7대 강국진입)'과 같은 호언은 이미 물건너 갔고 대운하사업도 불신을 사고 있다. '환경성 검토' 절차도 생략한 채 4대강 정비사업이란 말로 포장해 지난 연말 서둘러 착공식을 가졌다. 대운하사업인지 아닌지를 놓고도 대통령이 직접 언급하면 될 것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니 신뢰가 싹틀 수 있겠는가. 꼼수로 비치는 이유다.
'새만금을 동북아의 두바이로 만들겠다'는 '두바이 찬양가' 도 마찬가지다. 두바이는 지금 국민 한사람당 4만달러의 외채를 짊어지고 있다. 빚으로 잔치를 벌인 결과다. 금융위기에서 빠져나갈 수 없을 뿐더러 거품이 가장 심하다고 '더 타임스'가 보도하고 있다. 세습군주제인 데다 정당정치와 시민단체 활동이 없는 두바이를 벤치마킹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지난해는 기대가 실망으로 결과된 해였다. 미국발 금융위기만 탓할 게 아니다. 미국과 유럽, 일본과 중국은 여야가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 머리를 맛대고 있다. 반면 우리 정치권은 난투극을 벌이며 시정잡배처럼 굴었다. 그러면서 국민들 한테 위기를 기회로 삼자거나, 이젠 힘을 모을 때라고 강변하고 있다. 웃기는 행태다. 이 모든 게 결국은 리더십의 문제로 귀결된다. 국민을 화나게 만드는 것도 리더십의 부재 때문이다.
새해엔 국민과 소통하고 귀 기울이는 대통령, 대화와 타협으로 신뢰를 주는 정치판을 보고 싶다. 말잔치보다는 근면·성실의 원조 브랜드인 우직한 소처럼 묵묵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달라.
/이경재(본지 경영지원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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