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미륵사지 서탑 사리장엄구의 발견을 계기로 더욱 더 세간의 이목을 받게 된 서동설화는 「삼국유사」 기이편 무왕조에 미륵사 창건 내용과 더불어 매우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 내용의 구성을 요약하면 서동의 탄생과 성장과정, 신라 선화공주와 결혼, 서동의 왕위등극과정, 미륵사 창건 등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설화를 현재적으로 해석하면 첫째, 한 개인의 어려운 환경의 극복과정과 모친에 대한 효성, 둘째, 신라공주와의 결혼은 통합을 의미하며, 셋째, 왕위에 오르는 과정은 꿈을 이뤄내는 것이며, 넷째, 개인의 사랑을 뛰어넘어 백성과 국가를 더 크게 사랑하는 것으로서, 그 귀결은 미륵사 창건으로 표출되었던 것이다. 서동설화에 담겨져 있는 내용은 당시 백제의 어려운 국내외 상황을 극복하고 백제 중흥의 꿈을 이루고자 했던 무왕의 원대한 포부를 담아낸 역사적인 대서사시라고 할 것이다.
또한 서동설화가 실려 있는 「삼국유사」가 편찬된 시대적 상황은 고려가 몽고의 간섭 하에 있었기 때문에 백성에게 그 무엇인가 새로운 희망이 절실히 요청되었던 때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단군신화나 삼국의 건국신화의 기록을 통해 민족의 자긍심을 높이려 했던 의도를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삼국유사」 무왕조의 서동설화는 백제 무왕과 신라 공주와 결혼에서 보이는 민족적 통합, 그리고 미륵사 창건과 익산천도를 통해 백제 중흥의 꿈을 실현시키고자 했던 무왕대의 역사적 교훈을 본받아 고려후기 민족적 고난을 극복하고자 했던 시대적인 절실함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서동설화는 단지 가공된 설화인 것일까? 미륵사지 발굴조사 결과는 미륵사의 창건이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을 알게 해 준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미륵사는 세계 유일무이의 3원식 가람으로 미륵삼존을 모신 불전과 탑, 회랑이 세 곳에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뿐만 아니라 남쪽 회랑 밖에서 연못지가 노출됨으로써 "연못을 메워서 절을 지었다"는 설화의 내용을 증거하고 있다. 이번에 발견된 사리봉안기의 내용 가운데 선화공주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없다는 이유로 서동설화가 허구 내지는 가공이라는 견해들이 있지만, 오히려 이 자료에 보이는 백제왕후의 대왕의 안녕과 중생제도의 발원 기록은 서동설화의 미륵사 창건 내용을 이어받아 보강해 주는 자료라고 보는 것이라 더 타당하지 않을까.
앞서 언급했듯이 미륵사지의 발굴결과에서 나타난 가람배치의 구조 및 특징에서 보면 동·서원보다는 중원이 미륵사의 중심이기 때문에 사찰의 창건 내력 역시 중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또한 출토유물 가운데 간지가 새겨진 인장기와의 연대를 보면 역시 서탑의 봉안기 연대인 639년보다 앞서기 때문에 미륵사 창건은 이보다 이른 시기라는 것이다. 그리고 설화의 내용과 발굴결과를 대비해서 보면 서동설화는 역사적 사실에 충실히 기초해서 쓰여졌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번에 서탑에서 발견된 사리장엄 가운데 금제사리봉안기의 내용은 미륵사의 창건이나 전체적인 사실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미륵사의 일부인 서원에 국한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한다. 다시 말하면 사리봉안기에 선화공주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없다고 해서 서동설화가 부정되어서는 안 될 것이며, 오히려 백제말기 익산천도와 관련된 사실을 입증해주는 결정적인 열쇠가 바로 이번에 발견된 사리장엄이라는 것이다.
이번 대발견과 관련하여 전라북도와 더불어 익산시에서도 전례없이 전폭적인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인 홍보와 관심을 유도하는 한편, 익산역사문화지구로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익산지역에 산재된 백제말기의 도성유적은 그 보존상태도 양호할 뿐만 아니라 자연경관도 공주나 부여보다도 훨씬 잘 보존되어 있기 때문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이러한 사업을 진행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문화의식과 지방자치단체의 유적보존과 활용정책이 어떠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하루아침에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은 더욱 아니기 때문에 조급증을 가지기 보다는 이를 이루어 나가는 과정 자체를 통해 도민의 통합과 성숙된 문화시민의식을 배양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륵사 서탑 1층 중심기둥의 사리공에서 발견된 사리장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금세기 최고의 고고학적 성과라는데 아무도 이의를 달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연구를 통해 그 의미를 제대로 해석해 내는 것이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의 몫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최완규(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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