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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은 쌍둥이처럼 이해했던 친구"

마리 바우어마이스터가 기억하는 백남준

"저는 키가 크고 마른 여자였고 당시 백남준은 작은 체격의 동양남자로 생긴 모습은 아주 딴 판이었지만 서로를 쌍둥이처럼 이해했던 친구였다"

 

백남준아트센터의 초청으로 방한 중인 마리 바우어마이스터(75) 씨는 전후 세대였던 자신들은 예술가로서 이상을 꿈꾸면서 세상을 바꾸려했다며 고(故) 백남준(1932-2006)에 관한 기억을 소개했다.

 

바우어마이스터는 유명한 현대음악가인 남편 슈톡하우젠(1928-2007)과 함께 독일의 쾰른에서 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 많은 전위예술 퍼포먼스와 콘서트를 주도했고 1960년대에는 독일 아방가르드 예술계의 프리마돈나로 꼽혔던 예술가다.

 

그는 지난 3일 백기사(백남준을 기리는 사람들) 모임의 초청으로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강연에서 직접 갖고온 큰 대나무통 모양의 악기를 잠시 연주한뒤 이를 내던지는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어 "악기가 떨어지는 소리를 마음을 열고 들었으면 좋은 사운드로 들었을 것"이라며 자신이 갖고 있던 피아노를 백남준과 함께 밤중에 강에 갖다가 버렸던 일화를 소개했다.

 

"미친 것처럼 보였겠지만 그때도 아름다운 소리를 들었다"며 "당시 독일 부르주아 계급의 상징인 피아노를 던진 것은 고정관념을 깨고자 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처음에 백남준은 독일에서 음악을 공부해 쇤베르크 같은 위대한 음악가가 될 생각이었지만 미디어아트로 돌아섰으며, TV의 속성이 멍청하다는 생각에서 한 개가 아닌 여러개의 TV로 미디어아트를 했다면서 "그의 미디어아트 퍼포먼스는 한계에 제약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바우어마이스터는 "당시 예술에는 영구성이라는 개념이 없었고 백남준도 영원하지 않은 것을 추구했다"며 "존 케이지가 백남준을 찾아왔을 때 백남준은 벽에 달걀을 던지는 퍼포먼스를 선보였고 이후 백남준과 존 케이지는 정말 돈독한 관계를 이어갔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백남준이 오랜 세월 폐쇄적인 국가였던 당시 독일의 예술계에 불교 사상을 소개했고 공연 때 관객들에게 쌀을 던져 당국에 의해 공연이 중단되는 등 많은 일화들을 남겼다고 전했다.

 

그는 백남준의 공연은 매번 성공했고 플럭서스에도 참여하게 됐다며 자신이 미국으로 활동무대를 옮긴지 1년뒤 백남준도 미국으로 왔다고 설명했다.

 

바우어마이스터는 백남준은 뉴욕에서 샬롯 무어만과의 퍼포먼스로 경찰에 의해 공연이 중단된 것을 계기로 처음 미국내 주목을 받았고 록펠러재단의 펠로십을 얻는 데에도 성공했다며 미국은 위대했던 과거의 대가가 없던 나라인 만큼 창의력을 마음껏 발휘하기가 좋은 환경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백남준은 파괴하는 것을 좋아했지만 카오스의 세기인 현 시대에서라면 질서를 찾기 위해 정치가가 되려했을 것"이라며 "백남준의 정신이 언제나 함께 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함께 참석한 미술이론가 바존 브락 씨는 "유럽에서 백남준 만큼 성공한 아시아 예술가는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날 강연에는 백기사 모임에 참여하는 수필가 이경희, '다다익선'을 설계한 건축가 김 원, 국악연주자겸 작곡가인 황병기 씨 등 40명가량 참석했다.

 

한편 마리 바우어마이스터와 바존 브락은 4일 경기문화재단에서 열리는 '백남준의 선물' 국제 세미나에도 발제자로 참석해 백남준의 예술세계와 삶에 대해 얘기한다. 이 세미나는 5일 백남준아트센터에서도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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