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6월 초 재개관하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명동예술극장(옛 명동국립극장) 건물은 긴 역사만큼이나 숨은 사연도 많다.
당초 이 건물은 일제 강점기인 1936년 메이지좌(明治座)라는 이름으로 건립돼 주로 일본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으로 사용됐다. 건축주는 일본인 이시바시(石橋良祐)였고 건축가는 다마타(玉田橘治)였다.
해방과 함께 '국제극장'이라는 이름을 쓰다가 서울시가 접수하면서는 시공관(市公館)으로 개명, 집회나 공연시설로 사용됐다. 1957년에는 다시 명동예술회관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국립극장 역할을 맡아 연극 발전에 크게 기여했고 1962년 결국 명동 국립극장이라는 이름을 달게됐다.
그러나 1973년 남산에 국립극장이 들어서면서 폐쇄됐고 1975년에는 당시 대한투자금융에 팔려 사무실로 사용되다가 노후화로 당시 건물 소유주인 대한투자금융이 신사옥 신축을 추진하면서 해체 위기까지 갔다.
이에 문화예술계에서는 1960-1970년대 명동을 '예술의 거리', '낭만의 거리'로 불리게 한 주역인 이 건물을 보존해야 한다는 운동이 일어났고 결국 정부는 2003년 이를 매입했다.
이제 이 건물은 내부 리모델링을 거쳐 명동예술극장이라는 이름의 연극 전용극장으로 다시 문을 열 예정이다.
그동안 보존을 주장해온 김정동 목원대 건축공학과 교수가 3일 재개관을 앞둔 이 건물의 숨겨져있던 비밀을 공개했다.
김 교수는 "명치좌는 1930년 일본 도쿄(東京) 아사쿠사의 유명 극장인 오가츠칸(大勝館)을 그대로 베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평면도까지 디자인이 똑같다"며 "명치좌의 설계자였던 다마타가 오가츠칸의 설계자에게 허락을 받았는지 여부는 알수 없지만 짝퉁임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는 "10여년전 우연히 오가츠칸의 평면도를 보고 알게 됐다"면서 "1940년대까지 조선에서 활동한 다마타의 또 다른 설계작품인 국도극장(1936년 건립돼 이미 해체된 건물)도 베낀 혐의가 농후한 건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 교수는 "그렇더라도 건물의 보존 취지가 퇴색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특히 도쿄의 오가츠칸은 이미 없어졌다"고 덧붙였다.
한편 연극배우 출신인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명동예술극장의 개관을 기념해 개관작인 '맹진사댁 경사'에 카메오로 출연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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