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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주보기] 스포츠와 드라마 - 곽병창

곽병창(우석대 교수)

스포츠와 드라마는 많이 닮았다. 사람들은 스포츠 경기에서의 역동적이고 우열을 가리기 힘든 승부를 가리켜 극적인 승부라 말한다. 극적인 것은 그만큼 서로 맞서고 있는 팽팽한 힘의 대결과 충돌을 전제로 한다. 5차전까지 치른 한일전 야구처럼, 그 질기고 강한 싸움이 마침내 한 쪽의 승리로 마무리되었을 때 사람들은 '극적인 명승부'라며 환호하거나 탄식한다. 물론 아주 드물게는 결과에 승복하지 못 하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 스포츠의 결말은 상대에 대한 포용과 긍정을 통해 서로의 우열을 인정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스포츠 스타들은 많은 사람들의 염원과 기대를 한 몸에 쓸어안고 '운명적인' 도전을 펼친다는 점에서 아득한 제정일치 시절의 제관들과도 닮았다. 뿐만 아니라 제의의 연장으로 극을 만들어서 신께 경배하고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던 시절의 배우들과도 닮았다. 그래서 학자들은 스포츠를 현대의 제의라 표현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을 울리고 웃기는 드라마의 영역도 현대적으로 변형된 제의의 일환이다. 사람들은 드라마를 통해 동시대의 애환을 되새기고 타인들의 삶에 주목하게 되며 궁극적으로 올바르게 사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다. 드라마 속의 배우들은 잠시 다른 사람의 인생을 대신 살면서 일시적으로나마 스스로의 자아를 남에게 대여해 주는 존재들이며, 그 일정 시간 동안의 홀림을 통해 세상에 대해 성찰하고, 궁극적으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이들에게 삶에 대한 지혜와 용기를 전해 준다.

 

스포츠는 또한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서로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결속력을 다지는 데에 탁월한 기능을 발휘한다. 김연아가 시상대 위에서 애국가를 들으며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면 많은 국민들이 따라서 운다. 야구대표팀의 김인식 감독이 '야구보다 국가가 먼저'라는 출사표를 던지고 천신만고의 승부를 펼쳐 내는 동안 국민들은 온통 하나가 되어 울고 웃는다. 서울역 대합실의 노숙자들까지도 국가대표 축구선수들의 소속, 연봉, 최근 성적까지를 두루 꿰고 앉아서 '대한민국-'을 외치며 응원한다. 물론 엘에이의 야구장, 피겨장에서 눈물을 흘리며 대한민국을 외치는 교민들에게 조국은 막연히 강요된 추상명사가 아니다. 스포츠를 통해 그들에게 본능적으로 각인되어 있는 조국의 이름은, 듣기만 해도 핏줄이 요동치며 돌고 살갗이 더워지는, 분명하고 구체적인 이름인 것이다.

 

스포츠만큼, 드라마만큼, 분명하고 구체적인 감동과 즐거움을 주는 정치권력은 왜 없을까? 운동선수들은 필사즉생의 각오로 스스로를 담금질하며 훈련한다. 시합에 나가서는 한 치의 후회도 없을 만큼 최선을 다한 승부를 펼친다. 이기면 승리를 만끽하고 지면 묵묵히 돌아서서 스스로를 되돌아본다. 이 명료한 과정을 정치의 영역에서 기대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일까? 배우들은 늘 자신을 비우는 연습을 한다. 그리고 다른 이의 자아를 내 것으로 받아들인다. 내 자아를 잠시 비워 내고 타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스스로의 편협한 삶을 확장하려 한다. 그 과정에서 드라마를 보는 많은 이들에게 즐거움과 깨달음을 준다. 나 아닌 다른 존재를 긍정하는 '대신 살아보는 연습'을 권력 가진 이들에게도 좀 권해보면 어떨까?

 

스포츠나 드라마가 국민들의 의식을 마비시켜서 탈정치적 '중우(衆愚)'를 만들어낸다고들 하지만, 우리 시대의 '정치적 중우(衆愚)'들이 스포츠만큼만 정직하고, 드라마만큼만 열린 존재들이었으면 좋겠다.

 

/곽병창(우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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