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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마당] '미륵사는 선화공주의 창건이다' - 이재준

이재준(언론인·역사연구가)

익산미륵사 창건과 관련 아름다운 설화의 주인공였던 신라 선화공주. 과연 그 위치가 흔들리고 있는 것일까. 탑 사리공에서 발견된 금판 봉안기는 미륵사를 창건한 주인공이 백제 좌평 '사택(혹은 사탁) 적덕'의 따님이라고 적어 많은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리고 있다.

 

봉안기 가운데 가장 이슈로 부각되는 기록은 바로 '사탁(沙啄)'의 문제이다. 많은 학자들이 이를 '사택'으로 읽고 있으나 필자는 '사탁'으로 해석하고 싶다. 사택은 당대 백제 최고의 명문가(8대 대성중 하나)로 해석하고 있다. 이미 '사택'은 부여박물관에 소장된 '사택지적비'로 오래전부터 학계에 회자되어 왔다. 본래 사(沙)씨는 동성왕대부터 삼국사기,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성씨로 알려진다. 사택은 신라의 32금입택중 하나였던 남택, 양택, 본피택, 사량택등과 동일하게 봐야 할 것이다. 신라의 사량택은 '사탁'이라고도 불렸으며 6부 호족의 하나였지 않은가. 옛 기록에는 사량(沙梁)으로 금석문엔 사탁(沙啄)으로 표현된다.

 

청주 상당산성 공남문 아래 유적에서는 '사탁부속장지일(沙啄部屬長池馹)'이란 명문기와가 발견됐다. 이 기와는 신라 6부 호족인 '사탁부' 사람들이 만든 장지역(長池驛)의 유물이었던 것이다. 왜 이 명문 기와가 경주가 아닌 상당산성 아래서 출토된 것인가. 삼국사기 기록을 보면 685AD 신문왕 5년에 왕경 귀족인 사탁부 사람들을 서원경으로 이주 시켰다는 내용이 있다. 청주에도 신라왕경 귀족였던 사탁 귀족들이 대거 이주, 터를 잡은 것이었다.

 

그러면 경주에만 나타나는 '사탁'이란 칭호가 왜 백제 수도에 또는 익산에 등장했을까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백제 '사탁'은 신라 왕경사람들은 아니었을까. 백제 동성왕은 신라소지왕에게 청해 이찬 비지(比智)의 따님을 아내로 맞이한다. 그것이 493AD 일이다. 당시 이찬 비지도 신라 진골의 왕족으로 '사탁'소속일 가능성이 크다. 공주가 백제로 시집을 올 때 상당한 숫자의 이찬 비지일가의 백제 이주를 상정해 볼 수 있다. 당시 나제간은 결속력이 왕성한 평화시기로 왕의 장인이 되는 이찬 비지도 웅진에 내조했을 가능성이 크며 그 가족 일부의 이주도 생각해 봄직하다. 이들 집단이 '사탁' 가문이란 칭호를 얻었을 가능성은 다분하다.

 

사택 적덕의 따님 왕비 호칭은 삼국유사의 기록대로 '선화공주'로 불렸을 가능성이 크다. 미륵은 미래불로 후세에 나타난다는 '미륵선화'를 지칭한다. 신라 화랑의 정신적 이념이면서 민족 간 전쟁을 없애고 미륵정토를 이룩하고 싶은 국민적 염원의 소산으로 등장한 희망의 대상이었다. 백제 왕비는 이런 염원으로 미륵사를 창건하고 스스로 '미륵선화'가 되고자 한 것이리라.

 

미륵사는 무왕과 선화공주의 로망을 뛰어넘어 동서화합과 민족 융화라는 깊은 뜻을 지닌 사적이다. 이번 얘기들이 흥미위주로 논의되기 보다는 이같이 숭고한 뜻을 되새기는 계기로도 인각돼야 할 것이다.

 

/이재준(언론인·역사연구가)

 

이재준 약력

 

48년생/동국대대학원 한국사전공(82-84)

 

충청일보 편집국장(92-95)

 

충북도문화재위원 역임

 

한국미술사학회 회원

 

한국문화사학회 회원

 

충북에서 30여년 문화재 조사-수 백여 곳의 문화 유적 발견

 

백제문화권 조사

 

익산지역 조사/조선대 학보 '백제 와당연구' 게재

 

수상

 

81년 대한민국신문상 수상(신문협회)-중원문화권 설정 공로

 

95년 안종필 자유언론상(동아일보)

 

저서

 

충북의 기와 (78)출간

 

충북도 三大史誌(청주/청원사지)

 

한국의 폐사(95)언론재단 학술지원

 

역사칼럼집 '세태만필'

 

고구려와당연구(근간) 외 다수

 

논문

 

伽倻寺址 연구(동국대 황수영총장 고희논총)

 

沙啄部屬銘瓦 연구(서원학보)

 

金製천수경연구(정영호박사 고희논총)

 

宋代추정佛畵연구(근간)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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