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면희(전북대 쌀삶문명연구원 HK교수)
과거 여성들은 세상 살기 참 힘들었다. 남성들이 쳐놓은 덫으로 인해 꼼짝없이 가정에 갇혀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19세기 영국에서 자유주의 페미니즘을 연 헤리엇 테일러 밀은 여성이 남성만큼 이성적이기 때문에 하인을 두어서라도 가사부담을 줄여서 사회의 공적인 일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런 운동 덕분에 영국에서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기 시작했다. 다만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은연중 계급차별을 허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적용 대상이 지배계급의 여성으로 국한되었다.
마르크스주의도 여성문제를 해결하고자 나섰다. 엥겔스는 인간이 필요로 하는 것을 자연에서 얻기 위해 협력적인 사회적 실천에 동참해야 하고, 이것은 여성에게도 해당된다고 보았다. 그래서 여성해방의 첫 번째 길은 여성이 공적인 산업에 투입되는 것이었다. 여성 모두에게 사회진출의 문이 조성된 것이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여성이 떠맡았던 가사와 육아, 자녀교육은 어떻게 할 것인지가 남는다. 이에 대한 두 번째 길은 가사의 사회화였다. 그래서 탁아소 등을 설치하여 사회가 가능한 한, 가정의 일을 떠맡는 방도를 취했다.
그렇다면 자유주의나 마르크스주의 이념만으로 여성문제는 해소된 것일까? 그렇지 않았다. 여성이 사회에 진출한다고 해도 여전히 사회에서 지시하고 명령하는 중요 직책은 남성의 몫이었고, 여성은 지시를 받는 일이 주어졌을 뿐이다. 자유주의나 현존 사회주의 국가에서 대체로 그렇게 점철되었다. 왜 그런 것일까? 남성들이 생물학적 성(sex)이 다른 것을 기화로 사회적 성별(gender)에 대한 차별을 지속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가부장제가 의식 속에 뿌리 깊게 자리를 잡고서 제도적 차별을 지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을 청산하고자 한 흐름이 급진적 페미니즘인데, 법과 제도는 물론 문화도 바꾸고자 했다. 그래야 의식도 전환될 수 있기 때문이다. 환경위기가 증폭되는 요즈음 생태주의 페미니즘이 출현하여, 여성억압과 계급차별, 인종차별, 그리고 인간에 의한 자연 수탈을 함께 청산할 때 비로소 여성이 남성과 더불어 온전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올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여성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페미니즘 흐름이 계속 진화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자화상은 어떤가? 많이 나아지기는 했다. 그러나 최근 맑고 고운 이 땅의 여러 여성들이 가부장적 남성의 교묘한 사회적 덫에 걸려서 잇따라 자살을 선택하였다. 가장 최근에 아름다운 청춘을 뒤로 하고 자살을 택한 장자연씨도 마찬가지다. 항상 이런 사건 이면에는 남성 가부장적 문화가 추잡하고 음험하게 드리워져 있다. 계급이든 자본이든 인종이든 차별이 있으면서 권력이 작동하는 지평에서는 여성이 지속적으로 피해자가 될 수 있다. 구조적 문제의 청산이 결코 쉽지는 않지만, 이것을 남김없이 해소하지 않는 한 이 땅의 여성은 자칫 죽음의 나락에 떨어지기 십상이다. 특별히 이점은 권력을 행사하는 재계와 정계, 언론계가 명심해야 할 바이다.
/한면희(전북대 쌀삶문명연구원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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