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에 진행될 '전주재발견 현장답사' 주제는 '미국 남장로교회의 전주선교'다. 이번 답사는 전주지역의 개신교 전래와 선교사들의 선교활동을 되짚어 보고, 그들이 끼친 종교적·교육적·문화적 업적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기후와 풍토가 다른 데서 오는 질병의 고통을 이겨내고 전주사람에 대한 헌신적인 박애정신으로 삶을 마감했던 그들의 순교자적 삶을 되짚어 봄으로써 한국에서 기독교가 단시간에 확산될 수 있었던 이유를 찾아보고자 한다.
1892년 1월 미국 남장로교회(The Presbyterian Church In U.S)의 해외선교부는 젊은 선교사 7인을 한국에 파견한다. 테이트 목사와 그의 여동생 매티 테이트(Mattie S. Tate), 레이놀즈 목사와 그의 아내 팻시 볼링(Patsy Bolling), 전킨 목사와 그의 아내 메리 레이번(Mary Layburn), 리니 데이비스(Linnie Davis)가 그들이다. 이들을 일컬어 '7인의 선발대(The Band of Seven Pioneers)'라고 부른다.
이들의 선교지인 전주는 조선의 발상지라는 자부심이 대단한 양반의 고을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매우 완고한 풍속을 견지한 곳이기도 했으나 일찌기 프랑스 선교사가 이곳에 와서 천주교를 전도하고 있었기에 서양인에 대한 감정은 비교적 부드러운 편이라 할 수 있었다.
1894년 2월에 남장로교회 선교부는 테이트 남매를 전주로 파견하기로 결정하였고, 그 결정에 따라 남매는 3월 19일에 전주에 도착한다. 이들이 전주에 거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동학농민군의 봉기를 맞게 되어 잠시 전주를 떠났다가 그 해 11월 다시 전주에 와서 선교활동을 재개하였다. 뒤이어 1896년 11월에는 새로이 해리슨(W.B. Harrion) 목사가 전주에 와서 의료활동을 폈고 1897년 6월에는 레이놀즈도 합류해서 비로소 전주 스테이션이 확립되었다.
당시 전라감사이던 이완용(李完用)은 조선의 발상지인 완산에 눈이 파란 외국인이 살고 있음은 불경한 일이라 하여 남장로교 선교부에게 이전을 종용했고, 선교사들은 그 제안을 수용하고 중화산동의 대지를 환지받아 옮기게 되었다. 오늘날의 중화산동에 선교부가 이전하게 되었고 비로소 그 강 건너에 서문교회가 건립되었다. 서문교회는 전라도 최초의 교회이자 전라도 개신교회의 어머니인 셈이다.
한편 서문교회는 선교부의 선교사들과 신흥·기전학교의 학생 및 교사 등 많은 인원이 예배에 참석하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사람이 모이는 장소가 되었다. 이러한 모임의 장소는 전주 지역을 개화하는 일번지로서 역할을 충실히 했다. 김인전 목사는 서문교회 2대 목사로 부임해 신흥·기전학생들과 3·1만세 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현재 서문교회 한켠에는 당시 사용하던 종이 남아있다.
선교사들이 선교활동을 펼침에 있어 절실하게 요구되는 사항은 의료선교였다. 병들고 죽어가는 한국사회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병을 치료하는 의사와 그 기반시설인 병원이었던 것이다. 의사가 진료소를 차리면 구름처럼 사람들이 몰려들게 마련이었고, 선교목사는 환자들이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가 있었다.
전주에 가장 먼저 들어온 남장로교 선교의사는 해리슨이었다. 의술을 통해 수많은 사람이 구원받고 곧 신자가 될 수 있었다. 그 후 잉골드 여의사가 전주 은송리에다 여자를 위한 진료소를 차려 많은 여인들에게 진료와 더불어 복음을 전했다. 전주예수병원은 한강이남에서 가장 큰 병원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병을 치료하고 신자가 되었다.
남장로교회 선교부는 복음선교와 더불어 의료선교 뿐만 아니라 학교선교에 힘을 기울였다. 복음선교만으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가 없었다. 반드시 선교부에는 의료선교사가 와서 환자를 치료하면서 선교하게 하였다. 그리고 선교부는 신자의 가족은 반드시 교육을 시키라는 원칙에 의해서 서양식 교육을 실시하였다.
그리하여 1900년에 레이놀즈와 해리슨에 의해서 신흥학교가 설립되었다. 처음에는 김독와라는 1명의 학생으로 시작한 신흥학교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인재를 양성해 냈다. 그리고 이듬해 1901년에는 전킨 여선교사에 의해서 기전여학교가 설립되었다. 조선 전통사회에서 여성을 교육시킨다는 사실은 불가능한 일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남장로교 전주선교부는 여성의 교육을 위하여 교육담당 선교사를 배치하여 꾸준히 여성을 교육시켰다. 그 전통과 역사는 오늘에 이르고 있다.
미국 남장로교회가 1892년에 '7인의 선발대'를 전라도에 파송하여 개신교를 전하고 새로운 의술을 통해 수많은 인명을 구할 뿐만이 아니라 이 지역의 젊은이들을 교육시켜서 훌륭한 인재로 양성하였다.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개명한 문명을 전수해 준 그들을 우리는 잊을 수 없다.
/ 주명준 전주대 교수
※ 이번 답사는 '미국 남장로교회의 전주선교' (안내 주명준 전주대 교수) 11일 오후 2시 전주역사박물관 출발
완산칠봉아래 은송리 → 서문교회 → 신흥학교 → 기전학교 → 예수병원 → 선교사묘역 → 남문교회 → 완산교회 → 금산교회
※ 다음 답사는 25일 '순교의 성지와 초기 성당을 찾아서'(안내 변주승 전주대 교수)
※ 답사신청은 전주문화사랑회(www.okjeonj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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