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진부한 표현이지만, 21세기는 '문화의 시대'이다. 문화산업·문화콘텐츠·지역문화 같은 말이 일상어가 되었고, 도처에서 문화를 국가와 지역의 핵심 경쟁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우리사회에는 '문화'에 대한 몇 가지 오해가 팽배하고, 이런 오해에서 잘못된 문화정책과 행정이 비롯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첫 번째 오해는 문화와 역사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는데서 발생한다. 20세기에 가장 탁월한 문화평론가이자 미학이론가의 한 사람이었던 독일의 벤야민(Walter Benjamin)은 "문화는 역사를 갖고 있지 않다"는 말로 문화와 역사의 차이를 설명했다. 역사가 과거에 벌어진 사건에 대한 '기억의 체계'라면, 문화는 과거에 영향을 받으면서도 끊임없이 새로 창조되는 '현재의 지성과 생활'의 총체이다. 문화는 과거의 기반에서 형성되지만, 또한 문화는 항상 변형되고 순간마다 새롭게 만들어져 현재에서 타당성을 얻는다. 즉 역사가 과거형이라면, 문화는 언제나 현재진행형인 셈이다.
그런데도 어떤 이들은 역사유산을 정비하고 박물관이나 전시실을 꾸미는 정도로 '문화'의 생색을 내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현재에 대한 배려 없이 일방적으로 과거를 보여주는 장소들이 얼마나 따분하고 재미없는지를. 어릴 때의 수학여행부터 시작해 우리 대부분은 이런 문화 없는 '문화 공간'(?)의 추억들을 꽤 많이 가지고 있다. 이런 장소는 한 번 다녀오면 다시 가고 싶지 않을뿐더러, 문화유산에 대한 흥미조차 아주 잃게 만든다.
오늘날 유럽·미국과 일본 등의 문화선진국에서 박물관 등을 단순한 전시공간에서 다양한 체험 위주의 공간으로 재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세기형의 시설들은 보여주는 측, 즉 문화재 부문의 관료와 역사학자 등의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건립되고 유지되었다. 그러나 21세기의 문화공간은 사용자의 문화적 수요를 존중하고 다양한 문화행위가 이뤄지는 장소로 탈바꿈하고 있다. 문화의 현재성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문화 공간'들이 출현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에 대한 두 번째 오해는, '문화'를 물질적인 것으로 착각하는데서 발생한다. 흔히 '문화재'라고 하는데, 여기서의 '재(財)'야말로 문화를 단지 재화로 보는 시각을 반영한다. 그러나 백과사전만 보더라도, "문화를 구성하는 요소에는 언어?관념?신앙?관습?규범?제도?기술?예술?의례 등이 있다. 문화의 존재와 활용은 인간 고유의 능력, 즉 상징적 사고의 능력에서 기인한다."(『브리테니커 백과사전』) 빼어난 문학예술작품이나 역사유산은 물론 민속자료에 이르기까지, 따지고 보면 문화유산은 인간의 정신적 능력과 활동의 결과물이 아닌 것이 없다.
그러므로 '문화'에서 본질적인 것은 인간의 정신활동이지, 그 결과로 남은 물질적 흔적과 기록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런 당연한 사실조차 사람들은 종종 망각한다. 그리하여 문화의 물질적 흔적은 중시하면서도, 정작 문화를 창조하는 인간의 정신활동은 경시한다. 그러다보니 자꾸 지나간 문화의 흔적에만 집착하고, 현재의 살아있는 문화를 창조하는 데는 무능해지는 것이다.
문화에 대한 오해가 어디 이뿐이랴! 하지만 우리나라 문화행정의 난맥은 대개 이 두 가지 오해, 즉 '문화의 현재성'과 '정신활동의 중요성'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다. 그리하여 살아있는 문화와 문화행위에는 투자하지 않고, 건물이나 세우는데 혈세를 죄다 쓰고 있다. 그 최대의 수혜자는 '문화'나 '문화산업'이 아닌 토목건축업자가 된다. 그러면서 문화(관광)산업의 경쟁력을 운운하니, 길가는 개가 다 웃을 일이다. 전주전통문화도시와 군산근대문화도시 등의 사업을 벌이는 전라북도에서 특히 유념할 일이다. '전통문화'나 '근대문화'는 지역문화의 구성요소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현재에서 타당성을 얻고 사람들의 정신활동과 연계돼야 비로소 '문화'가 된다. 이것이 아니라면 전주나 군산은 결코 '문화도시'가 될 수 없다.
/김성환(군산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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