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성 지음·고즈윈·2009>전주에서 '살기'와 '놀기' 평화공존의 절실함
"김화성 그는 지금 전주로 가고 있다. 은은하고 온유하고 부드러운 사람들. 하지만 한번 일어서면 목숨 바쳐 싸우는 사람들. 느릿느릿 어눌하면서도 찰방지고 아금박스런 전주 사람들. 김화성의 8할은 김제 전주 같은 고향이 키웠다. 그곳에서 그는 행복했다. 그는 김제 평야에서 태어났고 전주신흥중학교와 전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어쩌다 서울로 대학 가면서 거기에 눌러앉아 직장 잡고 애 키우며 살게 됐다. 어느덧 반백의 세월을 살아온 그가 느릿느릿 노을 속 고즈넉한 뒷골목을 걸으며 기억 속의 그리운 어머니와 밥과 하늘과 동무들을 꺼내 책갈피 사이에 펼쳐 놓은 「전주에서 놀다」."
지난 3월 출간된 김화성의 「전주에서 놀다 : 나, 그곳에서 행복했습니다」(고즈윈)는 김화성을 위와 같이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한가지 중요한 게 빠졌다. 김화성이 '탁월한' 글쟁이라는 사실이다. '탁월한'에 액센트를 줘야 한다. 이미 출간된 여러 저서들이 말해주듯이, 그는 명문가다. 이 책도 그의 필력을 유감없이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수도권에 사는 전주 출신이 이 책을 읽으면 당장 전주로 떠나게 할 수 있을 만큼 선동력(?)이 뛰어나다. 다음 대목을 보시라.
"전주 밥집들 밥은 아직 살아 있습니다. 김이 무럭무럭 나고 기름이 자르르 흐릅니다. 굳이 소문난 집을 찾을 필요도 없습니다. 어쩌면 뒷골목 허름한 밥집이 더 어머니 손맛이 납니다. 자글자글 끓고 있는 된장 뚝배기. 그 속에서 두께두께 썰어 넣은 두부와 애호박이 자꾸만 어깨를 들썩입니다. 햐~아! 그만 '꼴깍!' 침이 넘어갑니다. 아무래도 이번 토요일엔 식구들 데불고 전주 한번 내려가야 하겠습니다."
김화성은 전주 음식과 전주인의 기질을 연결시킨다.
"전주 사람들은 함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나부대지 않습니다. 안온하고 튀지 않습니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난리치지 않습니다. 전주 밥상은 품위가 있고 풍요롭습니다. 넉넉하고 여유가 있습니다. 반찬 하나하나마다 곰삭고 깊은 맛이 우러납니다. 강그럽습니다. 간간하고 은은합니다. 곤곤하고 조선간장 맛이 배어 있습니다."
맹목적인 '전주 예찬론'인가? 그렇진 않다. 그는 대한민국 식당을 평정한 전라도 음식의 패권이 전주에서 광주로 넘어간 현실을 지적하면서 전주의 분발을 촉구한다. 전주에서 한 음식 한다는 숙수들은 이젠 주방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쯤은 전국의 소문난 집에 가서 남의 손맛도 봐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 책이 전주 음식만 다루고 있는 건 아니다. 전체의 반 정도가 "푸른 댓잎으로 남은 '혁명아 정여립'", "추사 김정희와 창암 이삼만", "전봉준과 강증산", "영락없는 전주사람 '벌교 선비 한창기'", "이창호는 전주다!", "'역사의 지문' 태조 이성계의 얼굴" 등 인물론이다. 재미있다는 건 두말 하면 잔소리다. '거시기 예찬론'도 있다.
"거시기는 모든 것을 다 품에 안습니다. 바닷물도 안고, 강물도 안고, 또랑물도 안습니다. 진보도 이쁘다 허고, 보수도 이쁘다 허고, 뚱보도 멋있다고 허고, 할머니, 할아버지도 최고라고 헙니다. 거시기는 죽어도 편을 안 가른당게요. 그냥 모든 게 거시기하고 저시기합니다. 그것은 맴과 맴을 이어 주는 '침묵의 소리'입니다."
'거시기'의 정신은 전주의 얼이라 할 화이부동(和而不同)이다. 김화성은 '거시기 예찬론'을 펴지만 전주의 모든 것에 대해 다 '거시기'로 밀어 붙이는 건 아니다. 그는 전주의 변화에 대해 아쉬워하는 게 많다.
"전주의 뒷골목도 거의 사라졌습니다. (…) 전주에서 자전거 타는 것도 포기해야 합니다. (…) 색시같이 종용하고 고즈넉하던 전주가 시끄러워졌습니다. 뒤숭숭하고 어수선해졌습니다. 느릿느릿 여유와 멋의 양반 도시가 자동차 중심의 도시가 돼 버렸습니다. (…) 뭔가 잘못됐습니다. 전주 4대문 안쪽만이라도 사람 중심의 교통 체제를 갖춰야 합니다. (…) 전주는 웅숭깊은 도시입니다. '마당 깊은 집'입니다. '우묵배미 동네'입니다. 늙은 느티나무 아래 놓여 있는 평상 같은 도시입니다. 사는 게 뭐 별건가요? 평상에 누워 별을 헤아릴 수 있으면 으뜸 아닌가요?"
이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도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 최근 김욱한 포항MBC PD가 'PD 저널'에 기고한 '시골이 소비되는 방식'이라는 제목의 글이 떠올라서다. 그는 "먼저 이 글이 '워낭소리' 제작진들에게 딴죽을 걸기 위해 쓰여진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어려운 여건에서 힘겹게 길어 올린 작품을 폄훼하기 위함도 아닙니다. 오해가 없기를 바랍니다."라고 전제한 뒤 다음과 같이 말한다.
"'느림의 재발견' '잃어버린 고향' '아버지의 눈물' 대충 이런 담론으로 '워낭소리'가 주류 언론과 기득권 세력들 사이에서 소비되고 있는 듯하다. 마치 엄청난 삶과 사상의 신천지라도 발견한 듯한 호들갑이 마뜩치 않은 것은 나만의 기분일까? (…) '워낭소리'를 다시 보라. 신파조의 대중가요 속에서 그려지는 부모님과 고향의 이미지를 지우고 다시 보라. 아늑한 고향은 없다. 피폐하고 빈곤한 농촌이 있을 뿐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없다. 늙고 병든 농민만 보일 것이다. 그게 대한민국의 시골이다."
혹 전주도 그런 방식으로 소비되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김화성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했는데, 그렇다면 김화성과 내가 동시에 갖고 있는 그 어떤 '편견'이 있는 건 아닐까? 김화성에게 전주는 추억과 향수와 놀이의 대상이다. 그가 아무리 전주를 끔찍하게 사랑한다 해도 그는 전주에 살지 않는다. '전주에서 놀기'와 '전주에서 살기'의 차이는 매우 크다.
나는 전주에서 살지만, '국립 전북대'라고 하는 온실 속에서 살고 있다. 서민들이 경제 때문에 어려워 못 살겠다고 아우성을 쳐도 그걸 피부로 느끼질 못한다.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전문직 종사자들은 전주가 '마당 깊은 집'이 되고 '우묵배미 동네'가 되길 바란다. 그러나 서민과 영세 자영업자들은 "누굴 죽이려고 그러느냐?"고 펄펄 뛴다. '전주에서 놀기'와 '전주에서 살기'의 차이다. 나 역시 전주에서 놀고 있는 셈이다.
'놀기'에서 '살기'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려는 게 아니다. 나는 김화성이 역설한 '화이부동'이 답이라고 생각한다. 둘의 평화공존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나는 최근 서울에서 활약하는 전북 출신 언론인의 모임인 '전언회' 회보에 기고한 글에서 "전북 언론은 바닥을 기는 참상을 면치 못하고 있는데, 전북 출신 언론인들만 서울에서 탁월한 활약을 하면서 존경을 받고 있대서야 말이 아니다"고 꼬집으면서 그들이 어떤 식으로건 전북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상설화할 것을 요청했다. 김화성이 그 빼어난 필치로 그런 선동에 앞장서주면 좋겠다. 아주 좋은 책을 잘 읽어놓고 이런 요청까지 한다는 게 뻔뻔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나 역시 최선을 다해 애를 쓰겠다는 말로 면죄부를 삼으련다. 전주시민들이 이 책을 읽고 '살기'에 '놀기'를 접맥시키는 자세로 4대문 안쪽만이라도 사람 중심의 교통 체제를 갖추자는 공감대를 형성하면 좋겠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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