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의 푸른 바다와 너른 갯벌로 시심을 키운 신석정 시인(1907~1974).
1924년 11월 24일 조선일보에 '기우는 해'를 발표한 이래 1974년 7월 8일 동아일보에 유고시 '뜰을 그리며'를 남기기까지, 그는 장장 반세기의 시력을 지닌 진정한 시인이었다. 설령 오랜 문단 활동을 했다 하더라도 끝내는 권력이나 금력을 탐해 말로가 좋지 않은 경우가 없지 않은 우리 시문학사에서 석정은 일생을 오로지 시창작에만 몰두한 흔치 않은 시인이었다.
교육계에 몸 담으며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지조를 지키며 삶을 마감한 시인.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 그를 그리는 마음을 담아 신석정전집 간행위원회가 「신석정 전집」(국학자료원)을 펴냈다.
간행위원은 허소라(시인, 군산대 명예교수) 김남곤(시인, 전북일보사 사장) 정양(시인, 우석대 명예교수) 오하근씨(문학평론가, 원광대 명예교수). 시인과 기자로 만났음에도 깊은 정을 나누었던 김남곤 시인을 제외하고는 모두 석정에게 시를 배웠다. 이제는 문단의 원로가 된 이들이지만, 석정 전집을 펴내려는 의지는 강했다. 석정 탄생 100주년이었던 2007년 간행위원회를 꾸리고 서울대도서관이나 국회도서관 등 각종 도서관의 수장본이나 신문사의 보관지 먼지 속을 뒤지며 자료들을 찾아냈다. "선생에게 빚을 갚는다"는 심정으로 전집을 준비한 이들은 무엇보다 이번 전집을 계기로 석정의 문학세계가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선생은 이 반세기 동안 초지일관 지조를 지켜왔지만 일언지하에 이름 지을 수 있는 시 세계를 고수하지는 않았다. 자연의 세계에서 꿈꾸는가 하면 삶의 현장에서 신음소리를 뱉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 시문학사는 '촛불'의 현실적 취약성은 무시한 채 낭만적 몽환성만을 밝히고, '이 밤이 너무나 길지 않습니까'의 울부짖음은 잊고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의 속삭임만을 기억했다. 선생의 시세계가 '목가시' '전원시'로 한정되는 것이 안타까웠다는 간행위원회는 "오히려 일제로부터 삶을 마감하는 날까지 끊임없이 민족과 민중의 생활을 파괴하는 체제에 대한 저항적인 시를 발표해 탄압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서울 문단과 교류하지 않고 전 생애를 고향과 그 이웃인 지방의 좁은 지역에서만 생활했던 시인. 일제 때부터 지속된 저항정신과 민중의식이 해방 후 분단 공간에서 상처입어 한 때 문단의 관심 밖으로 사라졌던 시인. 이번 전집 발간은 고고했던 시인의 시정신을 오늘에 되살리는 작업이다.
「신석정 전집」은 총 5권. 기존 저술과 신문과 잡지 등에 발표했던 작품을 수집해 수록했지만, 습작기 작품은 거의 제외됐다. Ⅰ권은 자작시집으로, 선생의 생전에 발간됐던 「촛불」 「슬픈 목가」 「빙하」 「산의 서곡」 「대바람 소리」 등을 모았다. Ⅱ권 유고시집은 사후 발간된 「내 노래하고 싶은 것은」과 시집에 수록되지 않은 작품을 편의상 「미수록 시집」으로 분류, 연대순으로 정리한 것. Ⅲ권 번역시집에는 「중국시집」과 「매창시집」을 모아 실었다. 각각 '창작류'와 '비평류'로 구분한 Ⅳ권과 Ⅴ권 산문집은 기존의 수상집 「난초잎에 어둠이 내리면」과 그밖의 각종 지면에 발표한 산문들을 수록했으며, 신문에 쓴 몇몇 단평류의 글들을 주제별로 한 데 모아 다시 편집해 실었다. 간행위원회는 "「슬픈 목가」 등은 초판본과 재판본이 상당한 차이가 있었지만, 모든 저작은 초판본을 따르기로 했다"며 "발표지가 유실된 몇몇 작품의 경우 유고로 대신했지만, 아직도 유고조차 분실돼 수록하지 못한 작품이 상당수에 이른다"며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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