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도 신종플루(공식 명칭 인플루엔자A[H1N1]) 감염 확인자가 나타났지만, 처음 우려했던 것만큼 심각한 양태로 확산될 것으로 전망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혼란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돼지 인플루엔자에서 명칭도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발병의 원인을 제대로 규명하고 있지 못한 현실이 그것을 말해준다.
20세기에 발생한 전염병이 많은 사람들에게 죽음과 시련을 가져다준 것을 기억한다. 1918년 스페인 독감과 1968년의 홍콩 독감은 각각 4천만 명과 75만 명에 달하는 사람을 사망하게 만들었고, 가장 최근인 2002년 겨울의 사스는 800명 이상을 죽음으로 몰아넣으면서 아시아와 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전염병이라는 것이 늘 있어왔고 또 과거와 달리 항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하는 의학 수준이 높아진 것은 다행이다. 다만 미국은 유사 인플루엔자 확산이 우려되던 1976년에 긴급하게 백신 프로그램을 가동하였는데, 당시 백신이 운동 및 감각 신경을 마비시키는 '길랭-바레증후군'을 야기하여 30명 이상을 숨지게 한 사례가 있었다. 과학이 미처 감당할 수 없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최근 전개되는 일련의 사태와 문명사회의 구조적 현실을 보면 깊은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이 돈벌이와 물질적 풍요를 위해 자연과 동식물을 희생으로 삼는 산업사회의 제도와 생활양식은 지구촌 곳곳에 시한폭탄을 설치하고 있는 격이다. 환경재난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닭과 돼지, 소 등 조류 및 포유류를 컨베이어 시스템으로 대량 생산하는 과정에서 조성되는 불량한 위생 상태와 질병 예방용 항생제 남용은 언제든 변형 바이러스를 양산할 수 있다. 잡초를 제거할 목적으로 뿌린 제초제 내성의 강력한 잡초가 이미 나타났다. 마찬가지로 이번의 신종플루와 달리 전염성과 위력이 강력한 수퍼 바이러스가 출현하여 조류와 포유류, 인간을 가리지 않고 습격할 수 있다고 예측하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가설은 아니다. 인류는 점차 위험사회(risk society)로 들어서고 있다는 것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인류는 문명적 성찰을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호화스러운 삶을 누리면서 시한폭탄을 안고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생활 속 위험 요인을 구조적으로 최소화하면서 자연과 더불어 소박한 삶으로 전환할 것인지 돌아볼 때가 되었다. 우리가 향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미래세대의 인류와 진화의 오디세이 호에 함께 타고 있는 지구 생명체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한면희 (전북대 쌀·삶·문명연구원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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