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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책으로 읽는 세상] ⑨그래도 언니는 간다

<김현진·개마고원·2009>MB시대에 살아남기…마음을 단단히 먹어라

"누가 그러더라구요. 이십대에 보수적인 놈들은 금숟가락 물고 태어난 놈들이고, 오십대에 진보적인 사람들은 그냥 사회부적응자라고. 씁쓸한 농담이었지만 금숟가락 안 물고 태어난 여자들, 예쁘지도 않고 잘나지도 않은 여자들이 살아남는 마지막 길은 그저 막돼먹는 수밖에 없잖아. 안 그러면 어떡해요? 인생이 자꾸 뎀비는데." (14쪽)

 

김현진의 「그래도 언니는 간다 : 앵그리 영 걸의 이명박 시대 살아내기」(개마고원, 2009)는 위와 같은 선언으로 시작한다. '한겨레'나 '시사IN' 등에서 한번이라도 그녀의 칼럼을 읽은 분이라면 그녀의 글쓰기 내공이 만만치 않다는 걸 눈치 챘으리라. 어찌나 말 펀치가 센지 이 책을 읽는 동안 여러 차례 키득거렸다.

 

'부탁해요'라는 제목의 노래가 있다. 가창력이 뛰어난 어느 여가수가 부른 노래다. 그 가사를 좀 소개하자면 이렇다. "그 사람을 부탁해요 / 나보다 더 사랑해줘요 / (…) / 눈치 없이 데이트할 때 친구들과 나올 거예요 / 사랑보다 남자들 우정이 소중하다고 믿는 바보니까요 / (…) / 밤에 전화할 때 먼저 말없이 끊더라도 / 화내지 말고 그냥 넘어가줘요 / (…) / 사랑한단 말도 너무 자주 표현하지 말아요 / 금방 싫증낼 수 있으니 / 혹시 이런 내가 웃기지 않나요? / 그 사람을 사랑할 땐 이해할 수 없었던 일들이 / 헤어져보니 이젠 알 것 같아요 / 그 사람 외롭게 하지 말아요"

 

남자인 내가 들어도 짜증 나고 화나는 이야기다. 내 딸내미가 그런 놈하고 연애한다면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줏대를 찾으라고 설득해 볼 것 같다. 싸가지가 없어도 너무 없는 녀석이 아닌가. '앵그리 영 걸' 김현진이 이걸 참아낼 리 없다. "그럼 도로 당신이 그 남자 만나!"라고 일갈한다. 아닌게 아니라 그렇다. 그렇게 아쉬우면 다시 만나면 될 걸 뭐 부탁하고 말고 할 게 있는가. 김현진은 이 노래가 어떤 남자와 헤어진 여인이 그 남자의 다음 여인에게 말하는 듯한 방식을 취하고 있지만, 실제로 이 노랫말의 화자(話者)는 다름 아닌 그 남자의 어머니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렇게 이해하지 않고선 도저히 용납하기 어려운 '반여성적 노래'라는 것이다. 옳소!

 

김현진은 젊은 여자가 세상 살아가는 게 쉽지 않다고 토로한다. "예쁘면 건드리는 바람에 손 타서 성질만 버리고, 못생기고 뚱뚱하면 있는 대로 구박 받아서 성질만 버리는 게 여자애들의 삶이다. 예쁘장하면 간혹 뭔가 얻는 수도 있겠지만, 장자연이 그러했듯 받은 것보다 훨씬 큰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 그녀들의 현실이다." (70쪽)

 

'무슨 배짱으로 아이를 낳으란 말인가'라는 제목의 글은 부유하지 못한 가임 여성과 더불어 그들의 남성 동지들도 공감할 수 있으리라. "지금 한국은, 없이 사는 사람들이 돈 없이 애를 낳는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아이에게 못할 짓을 하는 것처럼 죄스럽게 느껴지는 나라다. 적어도 MB처럼 자식에게 '아버지 빌딩이나 관리해'하고 턱하니 말할 수 있거나 한화 김승연 회장처럼 내 자식 때린 놈들을 반쯤 죽여놓을 수 있는 능력이 없는 한, 차마 미안해서 애 같은 거 못 낳겠다." (46~47쪽)

 

김현진은 이어 '애비 덕, 애비 탓'이란 제목의 글에서 자기성찰로 들어간다. 부자 아버지를 갖지 못한 사람들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는 뜻이다. 그녀는 "옳지 못한 것을 부러워하는 것도 죄였다"며 이렇게 말한다.

 

"제 가족, 제 집단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부끄러운 아버지와 그것을 얼른 받아 삼키는 뻔뻔한 자식이 이루는 부정한 톱니바퀴를 돌아가게 하는 근본에는 바로 나처럼 아비 덕 못 본 자식의 부러운 눈빛, 행여나 나에게도 콩고물이 떨어진다면 눈감아줄 준비가 언제라도 된 그 눈빛 역시 일조하고 있었던 것이다. 개혁이란, 진보란, 좋은 날이란 이토록 호락호락한 마음가짐으로는 결코 올 리가 없는 것인데도." (203쪽)

 

'아저씨는 우리 아빠 아니거든요?'라는 제목의 글은 우리 사회에 퍼져 있는 '가짜 혈연'을 고발한다. 그녀는 "모두가 내뺄 여력이 없어서 마지못해 사는 것처럼 보이는 지금의 한국에서 내가 정말로 역겨워서 견딜 수 없는 것 중 하나는 어르신들이 시시때때로 불리할 때면 순식간에 생성해버리는 '가짜 혈연'이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주로 젊은 여자가 그 대상이 되는 가짜 혈연의 생성법은 다음과 같다. 뭔가 상황이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여겨지면 얼른 사자후를 토하며 버럭 다음과 같은 외침을 곁들인다. '내가 너만 한 딸이 있다, 내가 너만 한 여동생이 있다, 내가 너만 한 손녀가 있다…! (…) 아니, 왜 이러십니까. 저를 자식처럼 아끼지도 않으면서 왜 부모처럼 존경받으려고 하세요? 우리 공평하게 합시다. 공평하게." (177~178쪽)

 

이명박 정부를 향한 고언도 있다. "현 정부의 가장 큰 문제점은,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밑에 사람 있다고 자신들이 믿고 있다는 사실을 숨길 만큼 영악하지도 못하다는 것이다. 차라리 카스트 제도처럼 아예 국민등급제라도 실시해서 없는 사람들을 막 대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겉으로 국민 여러분을 위해 어쩌고 하는 거라도 그만둔다면 적어도 지금처럼 역겹지는 않겠다." (101쪽)

 

아버지가 목사이며 부계와 모계 양쪽으로 3대 이상 개신교를 믿어온 집안의 딸로 태어난 김현진은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는데 벼락 안 떨어지면 그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는 관행이 한국 개신교를 멍들게 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러면서 이명박 장로님의 소통 능력을 걱정한다. "그는 정신적으로 한국인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것이다. (217쪽)

 

김현진은 '다시 이명박 장로님께 드리는 편지'에서 "대통령이 아니라 장로님이라 칭하는 것은 저 역시 개신교도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밝히면서 옛 인연을 소개한다. "십수 년전 서울 남대문시장 상인들이 조직한 선교회에 와서 간증한 것을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때 그 선교회 담임목사의 딸이었고 아직 어린아이였기에, 어른이 되어 이토록 장로님의 이름을 길거리에서 소리쳐 부르고, 여기저기에 장로님에 관한 글을 많이 쓰게 될 줄은 꿈에 몰랐습니다." 이어 그녀는 이명박 장로님께 다음과 같이 호소한다.

 

"장로님을 소재로 '나도 한때는' 시리즈가 유행하는 것을 아십니까? 나도 한때는 '아침이슬'을 애창했다. 나도 한때는 비정규직이었다…. 한때 그랬을지언정 그 고통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면, 언젠가 그 시리즈의 결말은 '나도 한때는 기독교인이었다'가 될지도 모릅니다. 지난 1년 동안 참으로 많은 눈물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저는 내년 이맘때가 되어도 이런 글을 적겠지요. 그때는 이토록 비통한 마음으로, 이토록 쓰라린 마음으로 쓰지 않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샬롬." (242쪽)

 

공정하게 말하자면, 없는 사람들 눈물 흘리게 만든 사건들은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도 수없이 많았다. 김현진의 말마따나, 이명박 정권은 속마음을 숨기는 영악함이 없기 때문일까? 아니면 정말 모든 걸 '하나님의 뜻'으로 여겨 당당함을 보이기 때문일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언니는 가기야 가겠지만, 그녀가 갈 길은 멀고도 험하기만 하다.

 

/강준만 교수(전북대 신문방송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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