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 여름호 특집 '나의 아버지'
아내와 몰래 사교춤을 배우러 다니다가 자식들에게 들켜 해명하느라 진땀을 빼던 김내성, 아들의 첫돌을 맞아 천 사람에게 한 자씩 받은 '천자문' 책을 만들어 선물한 박태원.
문인이기에 앞서 때로는 엄격하고 때로는 자상한 아버지였던 이들의 모습이 탄생 100주년을 맞아 자녀들의 입을 통해 전해졌다.
계간 '대산문화' 여름호(통권 32호)는 '나의 아버지'라는 특별기획을 마련해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맡는 김내성, 김환태, 모윤숙, 박태원의 자녀들 글을 수록했다.
소설가 박태원의 장남 일영(70) 씨는 아버지가 자신만을 위해 손수 만들었던 천자문 책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열두살 때 생이별한 아버지가 "이렇게 헤어져 그리워하며 한평생을 마치게 되리라는 걸 이미 그 때 아시어 그러한 정성을 쏟지 않으셨나 하는 생각도 난다"고 말했다.
박씨는 "선친의 함자 구보 박태원 앞에 간판처럼 나붙는 '월북 작가'라는 소리, 이제 그만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한다"며 "그의 문학작품이나 생애를 말할 때, 작가 박태원은 6ㆍ25 난리 중 북으로 가서, 북에서도 활발한 작품활동을 계속한 작가라고 하면 어떨까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추리 소설가인 김내성의 셋째 아들인 김세헌(59) KAIST 교수는 어린 시절 사별한 아버지가 "과학적이면서도 문학적이고 논리적이면서도 비논리적이었으며, 이성적이면서도 감성적이었다"고 회고한다.
부인이면서 친구이자 동업자였던 어머니와 마루에서 함께 장기를 두던 모습이나 자식들 몰래 함께 사교춤을 배우러 다니다가 들켜 진땀을 뺀 일, 담배연기 가득한 방에서 작품 방향에 대해 함께 의논하던 모습 등도 들려줬다.
평론가 김환태의 장남 영진(72) 씨는 여섯 살 때 세상을 뜬 아버지와의 기억이 많지 않지만, 훗날 어머니로부터 들은 아버지 임종 이야기를 듣고, 그 깊은 속을 짐작했다.
"어머니가 '이제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는데, 자식들의 앞길에 대해 바라는 바를 나에게 들려주시오' 하셨더니, 답하시되 '내가 남기고 가는 것은 어린 자식들뿐인데, 무슨 염치로 바라는 바가 있겠소. 잘 알아서 최선을 다 할 줄 믿으니 그것으로 충분하오'하셨다니, 1944년 암담한 시대에 대책 없이 어린 자식들을 혼자 떠맡게 되는 아내에게 더 큰 짐을 지워주지 않으려함이었겠지 싶다."(134쪽)
어머니의 문학 열정을 곁에서 지켜봤던 시인 모윤숙의 장녀 안경선(73) 씨는 어머니에 대해 "어머니 특유의 정열적이고 개척자적인 인생을 만들어 나가며 '나는 인간으로 살고 싶고, 한국적인 인간이되 세계 속에 사는 자연인으로 살다 죽는 것이 소원이다'라는 바람을 혼신의 힘으로 실현하셨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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