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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주보기] '원한의 도덕' 넘어서기 - 김성환

김성환(군산대 철학과 교수)

"선천(先天)에는 상극의 원리가 인간과 사물을 지배하니, 모든 인사가 도의에 어그러져서 원한이 맺히고 쌓여 하늘과 땅과 인간의 삼계(三界)에 넘쳐 마침내 살기가 터져 나와 세상의 모든 참혹한 재앙을 일으키나니…." 지금부터 백 년 전인 1909년, 39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증산 강일순은 낡은 인류문명의 질병을 이렇게 진단했다.

 

강증산이 아직 20대 초의 청년이던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좌절됐다. 우금치에서 30만 명이 넘는 동학군이 희생됐다.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도 동학군 토벌에 나선 토포사에게 다시 잡혀 맞아 죽었고, 남은 가족들도 모진 박해를 받거나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그 대부분의 희생자가 호남의 너른 들에서 나왔다. 호남에는 산 자들의 두려움과 공포가 가득했고, 죽은 자들의 원혼이 하염없이 구천을 떠돌았다. 그 때 강증산이 서러운 민초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원한을 풀어라. 척을 짓지 말라."

 

그는 해원(解寃)하고 상생(相生)하는 것으로 낡은 인류문명, 끝없이 상극하는 선천시대의 악업에서 사람들이 벗어나기를 갈망했다. "만고의 원한을 풀고 상생의 도로써 선경(仙境)을 열고, 조화정부를 세워 하염없는 다스림과 말없는 가르침으로 백성을 교화하고 세상을 고치리라"는 그의 염원은, 그리하여 그 어떤 분노와 복수와 저주보다 더 강렬하게 조선백성들의 마음을 흔들고 그들의 영혼을 치유했다. 그런데 다시 백 년이 지나, 우리는 또 한 사내의 말을 듣는다.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그러나 상극의 원리가 지배하는 세계, 잔인한 무한경쟁시대는 원한·분노·저주에 사로잡힌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들은 나와 다른 남을 인정하지 않고, 진리를 자기만 독점한다고 믿으며, 자기가 공격당할 수 없는 존재이고, 최강의 권력이며 절대로 대체될 수 없고 경멸당하지 않는다는 확신에 사로잡혀있다. 그들이 던지는 사문난적, 반동, 빨갱이, 사탄 따위의 언사가 우리를 두렵게 한다. 그들은 자기와 다른 남을 적으로 몰며, 증오와 저주의 이빨로 적을 물어뜯어야 스스로 '고귀한 자' '강력한 자' '지배자' '권력자'가 된다고 믿는다. 니체는 이처럼 뒤틀린 자기 확신을 '원한의 도덕'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마음 안에 남을 처벌하려는 강한 충동을 가진 모든 자들을 신뢰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하지만 상극의 세상에서는 이런 충동을 품은 자들이 대개 부유하고 강하며 유식하다. 강증산은 말했다. "부귀한 자는 빈천함을 알지 못하며, 강한 자는 병약함을 알지 못하고, 유식한 자는 어리석음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을 멀리하고, 오로지 빈천하고 병약하고 어리석은 자들을 가까이 하겠노라. 그들이 곧 내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강증산이 한 달 동안 쌀 한 톨 입에 대지 않고 빈속에 소주만 붓다가 쓰러져 갔다. 1909년 음력 6월이었다. "후천개벽의 날이 아직도 멀어서 다가오지 않으니 중생의 고통이 너무 심하다. 내 스스로 민중의 밥이 되어, 민중의 온갖 고통을 다 한 몸에 스스로 짊어지고 가노라"며. 그것은 결국 자살이었다. 그리고 백년 뒤 2009년 5월, '대통령'으로 불린 또 한 사내가 잔인한 세상의 고통을 짊어지고 목숨을 끊었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 밖에 없다"며.

 

강증산이 바보였듯이, 노무현도 바보였다. 그들은 자신의 죽음으로 상극의 기운이 가득한 세상의 악업을 대신하고자 했고, '원한의 도덕'에 사로잡힌 자들이 뿌린 저주와 복수심마저 거둬가고자 했다. 다시 니체의 말이 떠오른다. "인간이 복수심으로부터 해방되는 것, 그것이 나에게는 최상의 희망으로 가는 가교이며 오랜 폭풍우 뒤의 무지개다." 그러나 화해와 상생을 함부로 입에 올리지는 말라! 그것은 용서를 구해야 할 자들, 잔인한 하이에나의 이빨을 번득이는 자들이 스스로의 악덕을 덮기 위해 쓸 수 있는 언사가 아니므로. 삐뚤어진 지배욕에 사로잡힌 그들의 '원한의 도덕'으로부터 세상이 벗어나는 것, 그것이 곧 상생의 시대로 가는 길이다.

 

/김성환(군산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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