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분이 유명을 달리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애도하고 있다. 영결식이 끝난 뒤에도 조문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 와중에 '서거'가 아니라 '사거'라고 해야 한다고 토를 다는 것도 있다. 근엄한 충고는 종종 옹졸함을 감추는 수단이다. 또한 거기에는 이번 '자살'에 대한 이해방식의 차이가 끼어들어 있다.
닭을 쫓던 개는, 닭이 지붕으로 올라가면 멀뚱멀뚱 쳐다볼 수밖에 없다. 개는 그 닭이 자신의 먹잇감이 아니라는 것을 동물적 감각으로 알아챈다. 그래서 검찰은 '공소권 없다'며 수사를 종결한다고 신속하게 발표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그분의 투신은 현 정권과 검찰이 뒤에서 떠민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 우리가 빠져 있는 함정
소식을 듣는 순간 필자의 뇌리에 스친 건 맹자(孟子)의 말이었다. '목숨도 내게는 중요하고, 이상도 중요하다. 둘 다 보전할 수 없으면 목숨을 내놓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선택할 수밖에(生, 亦我所欲也; 義, 亦我所欲也, 二者不可得兼, 舍生而取義者也)'. 그러면서 한 마디 덧붙였다. '누구나 죽기는 싫지만, 세상에는 죽기보다 싫은 상황도 있다고((死亦我所惡, 所惡有甚於死者, 故患有所不?也)'. 2,300여 년 전에 살았던, 너무도 현실적이고자 했던 이상주의자. 수모, 좌절, 절망, 그러나 그 바닥에서 다시 우뚝 서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말하고 실천했던 불멸의 영혼!
'역사 앞에서, 목숨을 던질 만하면 던질 수 있지요' 라고 그분이 말한 적이 있다고, 김어준은 지난달 28일 한겨레신문에서 전해주었다. 그 말에서 다시 너무도 현실적이고자 했던 또 한 명의 이상주의자를 본다.
'맹자님 말씀'을 전하려 함이 아니다. 그분이 맹자와 동격이라는 말은 더욱 아니다. 필자는 그분이 부안 핵폐기장 건설,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이전 때 국민들에게 했던 짓을 기억하고 있다. 다만, 이런 해석은 가능하지 않을까? 이상과 현실은 그렇게 대립되는가, 현실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 이상은 과연 무슨 소용이 있는가, 이상을 품지 않은 현실의 허접한 맹목성을 어떻게 견디라는 말인가, 이게 맹자 말의 본의였다고. 현실에서 눈 돌리고 이상으로 숨거나, 이상을 외면하고 현실을 합리화하는 교활한 논리조작과, 그 이분법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우리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것, 정작 메시지는 이게 아니었을까? 이 보편적인 질문이 2009년 한국사회를 사는 우리에게 다시 던져졌다고 받아들이면 조금 생산적인 논의가 가능하지 않을까?
▲ 생명을 관리한다는 것
이번 사건은 이런 보편성과 함께 역사성이 있다. 그 중 푸코의 '생명에 대한 권력'이 보여주는 통찰이 도움이 된다. 그는 생명이나 삶이 다른 것들로부터 추상적으로 분리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국민의 생명도 존엄한 그 무엇이 아니라 사법권력-위생권력-규율권력(학교나 감옥)이라는 권력의 네트워크 속에서 작동된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가 생명과 권력을 생각할 때는, 보통 권력의 생사여탈권을 떠올린다. 죽음을 명령하고 집행하는 왕정시대의 군주권의 행사인 사약(?)이나 처형이 그것이다. 근대의 경우에도 생명을 제한하거나 빼앗는 방식의 사법권이 있다. 감옥이나 교수형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죽게 하거나 죽이겠다고 위협하는 것은 권력의 근본적 성격이 아니라, 권력의 특수한 작동양상에 불과하다. 즉, 죽게 하는 권력의 작동도 있지만, '살게 하는' 권력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권력이 생산에 개입한 근대에 더 중요하다. 과거 권력의 본질이 이미 생산된 재화를 '합법적으로 수탈해가는' 데 있었다면, 근대 권력은 아예 그 재화를 생산하는 조건(노동과 시간)을 관리한다. 죽이는 것은 낭비다. 잘 키워야 한다. 인구통계가 시작되고, 우리가 영화 ??괴물??을 통해서나, 최근에 신종인플루엔자가 발생하였을 때 확인하듯이 의사 같은 위생전문가들의 '위생권력'이 절대적인 힘을 갖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는 자본주의의 발달과 관련이 있다. 자본의 축적에 맞춘 인력 축적의 조절, 생산력의 확대와 이윤의 차별적 배분이 생명에 개입한 권력으로 인해 가능해졌다. 살아 있는 육체가 중요해지고, 그 육체의 힘에 대한 배분 관리가 이 시기에 불가결하였다.
이런 맥락에서, 예전에는 이승이건 저승이건, 그 지배자만이 행사할 수 있었던 죽음의 권리를 침해하는 방식이었다는 이유로 범죄로 인식되었던 자살이 19세기에는 사회학적 분석의 대상이 되었다. 당시 뒤르켐이 「자살론」을 쓴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권력-앎이 자살을 관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살은 사회의 집합적 성격을 띤 것으로 포착되었다. '대부분의 자살에는 동기가 있다. 그 동기는 현실 속에 있다.' 자살률은 그 사회의 건강성의 척도가 된다.
신체형을 위주로 하던 사법권력도 규율을 통해 죄인을 순화시키는 방향으로 변해갔다. 이를 인도적인 관점에서 해석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근대 국민국가의 형성과 발맞추어 국가권력의 효율성을 높이려는 노력이었다. 근대의 감옥도 훈련을 시키기 위하여 고안된 것이다. 그래서 감옥에서도 일을 시키는 것이다.
▲ 정작 당혹스러운 것은
생명을 제한하거나 빼앗던 시절의 사법권력의 관점에서도 물론 자살은 당혹스러웠다. 조선시대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심문한 뒤 판결에 따라 처형되어야 제대로 된 형벌이었지, 죄인이 심문을 받던 중에 고문을 당해 죽거나(物故란 말은 이 뜻이다) 자살하면 그것은 잘못된 형벌로 인식되었다. 사법권력이 죄인의 몸에 시행될, 죄인을 처형할 여지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죄인을 훈련시키려고 했던 근대 사법권력이 자살에 대해 당황한 이유는 그 '죄인'을 길들일, 훈련시킬 여지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달리 보면 자살은 생명에 대해 행사되는 권력의 경계와 틈에서 확보한 개인적인 죽을 권리의 출현이기도 하였다. 여기에는 맹자의 말처럼 '죽기보다 싫은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개인의 권리도 들어 있을 것이다. '이 죽으려는 고집은 생명의 관리가 권력의 책무로 대두된 사회에 대해 최초로 경악스런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현상의 하나였다.'
결국 자살은, 근대의 '생명을 관리하는 권력'의 작동에서 보면 매우 당혹스러운 일이다. 그분의 자살 앞에서 청와대나 검찰이 멍하니 아무 말을 못했듯이. 그들이 애도의 뜻에서만, 안타까움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은 당혹스러웠다.
이쯤에서 필자는 궁금하다. 그 정치-사법권력은 '죄인이라고 판단한' 그분을 처형하고자 했을까, 길들이려고 했을까, 아니면 둘 다였을까? 어느 쪽이든 닭 쫓던 개는 당황스러웠을 것이며, 둘 다였으면 더 당황, 허탈했을 것이다. 그것도 '죽음으로 맞섰다'는 상투적인 표현이 끼어들기에 머쓱한 몇 줄 유언만 남기고, 닭 쫓던 개가 알 수 없는 세상으로 떠났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 개는 닭을 쫓던 이유를 몰랐던 게 아닐까? 그러면 이번엔 우리가 허탈해지는데…. 그래도 필자의 질문은 계속된다. 우리는 지금 그 개와 함께 이 세상에 살고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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