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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책으로 읽는 세상] ⑬재미있는 완주 이야기

<완주군·선샤인뉴스·2009>큰 도시보다 군이 번영 누려야 나라가 잘된다

대한민국 인구의 반이 수도권에 몰려 살지만, 이 가운데 54.9%가 서울·인천에 몰려 산다. 지방도 비슷하다. 경남권의 60.2%가 부산·울산에, 경북권의 58%가 대구·포항에, 전남권의 57.2%가 광주·여수에, 전북권의 49.2%가 전주·익산에, 충남권의 57.2%가 대전·천안에, 충북권의 55.7%가 청주·충주에, 강원권의 50.7%가 춘천·원주·강릉에 몰려 산다. 이 통계를 보고 있자면, 대한민국의 땅이 좁다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넓게 퍼져 살아도 모자랄 판에 죽어라 하고 큰 도시에만 몰려 사는 주제에 왜 국토 사이즈 타령을 한단 말인가.

 

한국인의 행복도가 세계적으로 하위권에 속하고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고 평균의 두 배에 이른다는 건 무엇을 말하는가? 그게 단지 먹고 살기가 어려워서 빚어진 일인가? 물론 그런 이유가 없진 않겠지만, 우리가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공간의 사회심리학'이다.

 

동물학자 데즈먼드 모리스는 「인간동물원」에서 좁은 공간에 밀집돼 있는 동물원의 동물들이 병에 걸리고, 새끼를 죽이고, 난폭하게 싸우고, 자기 몸을 불구로 만드는 자해행위를 하는 이상(異常) 징후를 보였다는 점을 지적했다. 우리 인간은 다를까? 이미 많은 연구를 통해 과밀은 스트레스·불안·질병·범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게 밝혀졌다. 그런데도 우리는 과밀이 무슨 선진국의 상징이라도 되는 양 과밀을 향해 미친 듯이 질주하고 있다. 100층이 넘는 마천루는 현재 세계에 5개 뿐이지만, 5년 뒤 한국에만 10개가 들어선다지 않는가.

 

이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광역시·시보다는 군(郡)에 관심과 더불어 애정을 가져야 마땅하다. 완주군과 선샤인뉴스가 엮은 「재미있는 완주이야기」(인물과사상사, 2009)에 주목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이 책은 '콩쥐팥쥐' '선녀와 나무꾼'으로 대변되는 완주군의 민속을 스토리텔링(storytelling)과 접목시킨 작품으로, 지역의 우수 문화콘텐츠를 발굴하기 위해 완주군과 선샤인뉴스가 진행한 '2009 완주군 전래동화 공모전'의 수상작들과 현장 취재물을 담고 있다.

 

'전래동화 다시쓰기'엔 '필리핀 엄마'(이유리), '목남과 부선의 사랑이야기'(김요안), '팥쥐는 왜?'(이현주), '선녀 설희, 소년 승우 그리고 새하얀 여름'(김정현), '선녀가 가르쳐 준 연날리기'(정해민), '창작동화'엔 '단우와 여의주'(이영미), '엄마 나무, 안녕?'(강혜림), '두메장수와 연이'(전경진), '루위유성과 김만수'(박은숙), '물고기마을'(채민경) 등 모두 10편의 동화가 실려 있다. '완주군 전래동화 공모전'과 더불어 '캐릭터 공모전'도 같이 진행되었는데, 국민적 참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전국의 많은 분들이 참여를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전북의 스토리텔링'에 대해 고민을 해보왔다. 전북은 빼어난 자연·문화유산에 상응하는 인지도를 전국적으로 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가끔 '전남 전주시'로 써보내는 우편물을 받거나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들을 접하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전북의 정체성이 스토리로 각인되지 못한 탓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전북이 자신 있게 내세울 수 있는 자연?문화유산 '베스트 10'을 뽑아보자. 거기에 무슨 스토리가 있는지 스스로 검증을 해보자. 너무 낡았거나 빈약하거나 없다. 이게 참 이상한 일이다. 전북은 상대적으로 그 어느 지역보다 더 탁월한 문필가·언론인들을 많이 배출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이 분들이 전북이라는 지역에만 머무르지 않고 전국을 포용하는 건 아름다운 일이긴 하지만, 너무 통이 큰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전북 어느 도시에서건 그 지역의 대표적인 서점을 가보자. 한 구석에나마 지역을 소개하는 책들이 따로 꽂혀진 서가를 만날 수 있는가? 아니 그 이전에 한 도시의 탄생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걸 개략적으로나마 정리한 책을 찾을 수 있는가? 남들이 전북을 어떻게 알고 있느냐를 말하기 이전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제대로 알고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답은 모두 부정적이다.

 

내가 약식으로나마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해봐도 '전북의 정체성'을 인식하는 학생이 거의 없다.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그 따위 정체성 이야기를 하느냐고 반문한 분들도 있겠지만, 지금 무슨 편 가르기를 하자는 뜻으로 정체성 타령을 하는 게 아니다. 젊은이들이 자신이 태어나서 살고있는 지역에 대해 최소한의 자긍심조차 갖지 못한 채 언제건 기회만 닿으면 떠나려고 한다면, 그 지역에 미래가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지역발전을 위해 인재를 육성하자고 외친다. 모든 이들이 찬성할 수 있는 옳은 방안이다. 그런데 우리의 인재육성 전략은 여전히 '인재 서울보내기 운동'의 틀에 갇혀 있다. 거칠게 말하자면, 지역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인재일 수 없다는 전제를 공공연히 유포시키는 자해(自害) 행위를 범도민 차원에서 저지르고 있는 셈이다. 학생들은 그런 몹쓸 프로파갠다에 주눅 들어 자기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다. 자신감이 약하다. 졸업후 서울로 뜬다는 '패자부활전'만을 기다리는 형국인데, 이게 또 기가 막힌 이야기다.

 

우리는 서울로 가지 않고 지역에서 일을 해보겠다는 젊은이들을 존중하고 존경하지 않는다. 기껏 해준다는 말이 "너 정도면 얼마든지 서울 갈 수 있다"는 격려다. 친구들조차 "너 정도면 얼마든지 서울 갈 줄 알았는데 왜 전북에 남았는지 모르겠다"는 말로 지역에 남은 야망 있는 젊은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게 우정의 표현이다. 스스로 전북을 '저주받은 땅'으로 자리매김하지 못해 안달하는 것만 같다.

 

지금 나는 자기 자식을 서울로 보내고 싶은 부모들의 마음을 감히 탓하는 게 아니다. 그건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나 역시 대학입학을 앞둔 딸에게 "전북대도 좋다"고만 말할 뿐, "너는 꼭 전북대에 진학해야 한다"고 말하진 않는다. 본인이 서울로 가겠다면 보내겠다는 게 나의 뜻이다. 지금 나는 스스로 모순을 범하고 있는 건가? 그렇게 생각할 분은 그렇게 생각하는 자유를 말리고 싶은 뜻은 없지만, 지금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우리 모두가 다 동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원칙에 관한 것이다.

 

공적 차원에서 개입해 돕지 않아도 서울로 갈 사람은 서울로 가게 돼 있다. 가족 차원에서 어련히 알아서 잘 할까. 그건 그냥 '시장 논리'에 맡겨두자는 뜻이다. 그러나 공적 자금과 지원만큼은 지역에 남겠다는 학생들의 몫으로 돌아가게 하자는 것이다. 이들에게 장학금을 더 주고 이들의 기숙 시설에 지원을 더 해주고 이들에게 격려를 더 해주자는 것이다. 왜? 이들이 전북을 지킬 진짜 인재들이기 때문이다.

 

엉뚱한 독법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내가 「재미있는 완주 이야기」를 읽으면서 얻은 메시지는 바로 그것이다. 나는 큰 도시들보다는 군(郡)이 번영을 누려야 나라가 잘 되는 건 물론 한국인의 전반적인 행복도도 올라갈 것이라고 믿는다. 완주군민, 아니 전국의 모든 군민 파이팅!

 

/강준만 교수(전북대 신문방송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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