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바랜 풍경…햇살 담은 맛…세월의 향 간직한 웰빙 젓갈 메카로
타는 태양에 바닷물이 줄어간다. 바람보다 일찍 깨어난 염부의 땀과 오랜 기다림 끝에 만들어진 것이 바로 곰소염전의 천일염. 부안군 진서면에 위치한 곰소염전에서 나는 때깔 좋고, 짭조름한 소금은 자연스레 맛 좋은 젓갈을 만들었고, 이를 사고 파는 시장을 형성했다. 김장철이면 곰소젓갈을 사기 위해 전국에서 밀려드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게 곰소젓갈이다.
▲ 일본인에 의해 조성된 곰소염전
최근 근대문화유산의 보존가치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지만 개발논리에 밀려 소중한 그것들이 사라지고 있다. 우리지역의 현실도 매한가지다. 전라북도는 일제강점기 수탈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비운의 땅이다. 김제의 비옥한 평야가 그렇고, 군산의 철로와 항구가 그렇다.
곰소염전도 이 무렵 조성된 것. 일본은 군항의 요충지로 삼기 위해 곰소항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지금의 연동마을에서 곰소와 작도를 연결하는 제방을 쌓아 도로를 내고, 제방 안쪽의 간척지에는 염전을 만들었다.
일본은 1904년 러일전쟁을 치르면서 대규모의 군사비용과 재정지출이 커지자 식민지 조선에서 전매제도를 강화시키는 계획을 구상했다. 천일염전은 염전을 축조하고 자연력에 의존해 소금을 결정시키는 제염법으로 특별한 기계설비와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따라서 조선 내에 천일염전을 구축해 값싼 천일염을 관염(官鹽)으로 만들어 전매체제 통제를 통한 수입을 올리려 했던 것이다. 이러한 계획은 1945년 일본의 패망으로 자연스럽게 중단되었다.
▲ 남선염전주식회사와 천일염
다 아는 상식이지만, 소금은 식품의 조리 뿐만 아니라 생명을 유지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무기질이다. 그 중에서 태양열을 이용해 바닷물을 증발시켜 만드는 것이 천일염이다. 전라북도에는 8곳에서 천일염을 생산하고 있지만 곰소염전의 소금은 가히 최고의 하얀 빛깔 소금 꽃이다.
곰소염전은 1940년대 초반까지 전통적인 생산방법으로 자염(煮鹽)을 생산하던 곳. 자염은 해수(海水)를 끓여서 만든 소금으로 화염(火鹽), 전오염(煎熬鹽, 육염(陸鹽)이라고도 한다. 곰소만은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넓은 간석지가 형성돼 있어 자염 생산의 안성맞춤이다. 따라서 바다와 인접한 갯벌에서 갯벌 흙과 짠물을 이용해 농도가 짙은 소금을 쉽게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자염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며칠 동안 쉬지 않고 끓여야 하는 번거로움으로 연료비나 인건비가 과다하게 지출되었다.
곰소염전에서 천일염이 대량으로 만들어 진 것은 해방 후인 1946년 남선염업주식회사(南鮮鹽業株式會社)가 발족되고부터다. 천일염 생산은 자염 생산시 가장 많은 비용을 차지하는 연료비가 전혀 들지 않아 당시만 해도 '획기적'이었다.
그러나 자염과는 달리 염전부지 시설조성에 대한 초기비용과 소금 자체의 중량 때문에 운송비가 차지하는 비용이 높아 곰소염전 천일염은 가격 경쟁력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이유에도 불구하고 당시 회사 내 생산면적은 85정보(84만2975m²), 직원 수 130여명, 연간 소금의 생산량은 무려 5000톤에 달했다.
하지만 지리적 접근성을 극복하지 못해서 쇠락했고, 지금은 단지 몇명의 일꾼만이 고된 소금생산을 하고 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염전은 반으로 줄고, 수차는 멈춘지 오래다. 당시 왁자지껄 하던 사람의 냄새는 사라지고, 허물어져 가는 낡은 염부들의 생활공간만이 남아 씁쓸할 뿐이다.
▲ 최고의 젓갈엔 곰소만 천일염
곰소염전에서 생산된 천일염은 바닷물 10말을 한낮 태양 볕에 잠재워야 새하얀 결정체인 천일염 1되를 얻는다. 생산량을 떠나 품질은 전국 최고. 이유는 자연지리적 조건, 즉 풍부한 일조량과 적절한 강수량, 그리고 철분이 많은 갯벌과 큰 조석간만의 차 등 기후조건이 타 지역에 비해 유리하기 때문이다. 또 곰소 천일염은 낮은 염도와 쓴맛이 없고, 미네랄이 풍부하여 젓갈재료에 곰소 천일염을 넣고 버무렸을 때 발효가 잘 되기 때문에 젓갈 생산업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소금이다.
이렇듯 곰소에서는 자연스레 천일염을 이용해 젓갈을 제조하게 되었다. 조선시대 이 지역의 대표적 포구였던 후포와 사포는 토사가 쌓이면서 폭이 좁아지고 수심도 얕아져 포구의 기능이 점차 약화되었다. 줄포 역시 1960년대 초 어선의 대형화와 갯벌 퇴적으로 어항의 기능을 곰소항으로 넘겨주게 된다. 줄포항의 반사이익으로 곰소항에 입항하는 어선의 수가 증가하고, 항구기능이 급속히 발달됨에 따라 젓갈업도 점차 성장한 것. 곰소젓갈이라 불리는 다양한 젓갈류를 만들어 파는 가게들이 즐비하고, 바늘 가는 데 실 가듯 밥 도둑 젓갈정식이 이 지역 대표적 음식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여기에 변산반도 일주도로와 최근의 서해안 고속도로 등 이 지역에 이르는 접근성이 좋아짐에 따라 수려한 자연환경과 곰소젓갈을 찾는 관광객이 크게 늘어가고 있다.
▲ 이제 '젓갈의 명소'로 발돋움 할 때
입지적인 요건을 볼 때, 곰소는 광천이나 강경에 비해 젓갈과 연계시킬 수 있는 갯벌, 소금, 도요지 등 생태체험관광자원이 풍부한 곳이다. 곰소젓갈의 맛과 전통을 살리고, 다양한 문화생태적인 관광자원을 연계한 프로그램을 개발한다면 서해안 최대 젓갈 생산지로 이름을 날릴 날이 멀지 않을 것이다.
반가운 소식은, 7월 초 곰소젓갈 발효식품센터가 착공에 들어갔다고 한다. 웰빙 수산발효식품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셈이다. 이를 기반으로 웰빙시대에 맞게 곰소젓갈과 곰소염전 천일염이 세계의 명소 및 자원으로 자리잡기를 기대한다.
/최우중 문화전문객원기자(전주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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