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게 키워오고 있는 꿈이 있다.
커다란 당산나무 옆에는 아기자기한 솟대가 세워지고, 정갈한 마을 공동샘과 시원한 모정이 자리를 하면 주변으로는 소박하지만 정취 있는 흙집과 한옥들이 들어선다. 그곳에는 오래된 지인들이 산다. 글을 쓰는 사람, 춤을 추는 사람, 음악을 하는 사람, 조각을 하는 사람, 굿을 치는 사람 그리고 오래도록 황토빛 흙을 일궈온 사람들, 그들과 함께 마을을 이루고 싶은 꿈이다. 일상의 생활에서 항상 굿이 함께 하는 굿치는 마을을 이루어 같이 사는 꿈이다.
이러한 꿈을 꾸게 된 것은 어르신들께 20여년간 굿을 배우고 후배들에게 굿을 가르키면서 어떻게 하면 마을에서 현장에서 사라지고 있는 굿을 제대로 이어갈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생긴 것이었다. 마을에서 항상 굿과 함께 했던 당산제, 줄감기, 천제, 풍어제등이 굿치는 사람이 없어 점점 사라지고 있거나 남아있어도 형식적으로만 남아있음을 볼 때 참으로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수 천년동안 이어져온 우리나라 고유의 민속 문화가 각 마을에서 굿을 연희하는 사람들이 없어서 사라지고 있고 있는 현실이라니…. 무형의 문화유산이 보존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연희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사람을 통해서 전해져야 하기 때문에 사람이 가장 중요하고, 교육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교육이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현실도 아니거니와 전수관이라는 닫힌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문제이다. 그나마도 다행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요즘 굿을 교육 받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젊은 학생들이다. 이들은 굿의 근간을 이루었던 농촌의 삶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교육을 통해서 전통의 문화예술을 배우고 익히고 각자 학교에 돌아가서 발표회라는 형식으로 굿을 치고 있다. 판굿 위주의 교육이 이루어지는 현실 속에서 판굿이 굿의 전부인양 인식을 하고 있는 학생들을 볼 때마다 어떻게 교육을 해야 하는가 고민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들에게 굿을 치는 일상적인 공간을 만들어 주고 싶어 전수관 마당에 당산나무도 옮겨 심고 당산에 줄을 감고, 솟대와 장승도 함께 매년 세우고 있다. 이후에는 이곳에 집도 여러 채 짓고 공동샘도 만들고 하여 굿치는 마을을 만들고 싶다. 이미 농촌에서 굿을 치기 위한 기본이 사라져버린 오늘날 새로운 개념의 마을이 형성되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굿치는 마을은 전국 곳곳에 있어야 한다. 지역마다 생활풍습과 억양이 다르듯이 그 지역의 풍토에 어울리는 마을과 굿이 살아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만이 그 옛날 굿으로 화합하고 자존심을 가졌던 우리 한민족의 정신이 아름답게 되살아 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한 지역에서 20년 넘게 한 지역굿만을 지키고 살아오면서 답답하기도 하고 조급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꾸준히 여유를 가지고 지역굿을 계승 발전시키는 일을 하면서 지역의 굿이 그 지역만의 색깔을 가지고 올바로 살아나야 우리나라 전체의 굿이 풍성해질 것이라는 나름대로 큰 생각이 생겼다. 작게는 풍물 굿판의 중심이었던 전라도 굽이굽이 마을 곳곳에서 모심을 때, 김 맬때, 백중 때, 칠석 때, 정월대보름 때, 아플 때, 기쁠 때마다 주기적으로 굿과 함께 살아왔던 우리 조상들의 삶이 되살아나는 희망을 가져본다. 온 들판 가득 초록 물결이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요즘 굿치는 소리가 마을마다 울려 퍼지기를 꿈꾸며….
/이명훈(고창농악보존회 회장)
▲ 이명훈 회장은 서울예술대와 전북대를 졸업했다. 98년 전주대사습 장원, 2006년 한국민속예술축제 최우수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고창농악전수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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