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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주보기] 일본의 마츠리(祭)와 지역사회 - 임경택

임경택(전북대 일문과 교수)

2주 전에 일본의 마츠리(祭)를 보고 왔다. 나리타 공항에서 가까운 사와라라는 곳이었다. 이 곳은 일본의 도쿠가와 시대에 토네가와라는 큰 강의 유로를 변경하면서 생겨난 상업도시로 내가 박사학위 논문을 집필하기 위한 필드워크를 행했던 곳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그 당시부터 지역주민들만의 마츠리가 만들어져 지금까지 시행해 오고 있다. 십 수 년에 걸쳐 관찰하고 조사해 왔지만, 언제나 일본 지역사회의 힘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마츠리, 한국인이 일본문화를 생각할 때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의 하나이다. 일본관광공사의 달력을 보면, 일본열도 어디에선가 하루도 빠짐없이 마츠리가 열리고 있다. 그런데 얼핏 보면 단순한 축제처럼 보이지만, 실은 일본인의 삶을 질서 짓고, 그 안에 작은 해방공간을 만들어 주는 중요한 기제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은 듯하다. 일본의 지역사회와 그 질서를 이해하는 데 마츠리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임을 알아야 한다.

 

일본의 마츠리는 크게 도시와 농촌의 마츠리로 나눌 수도 있는데, 농촌에서는 농사의 주기에 맞추어 신에게 제사를 지내왔고, 도시지역에서는 주로 여름철에 역병이 도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실시해 왔다. 역신보다 더 강한 신을 모심으로써 그 역병을 제압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한 것이며, 거기에 축제적인 요소를 가미한 것이다. 소박한 믿음에서 출발한 마츠리는 관의 도움없이 철저하게 민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진다. 그 안에서 그들은 지역 사회 내에서의 자기 위치를 확인하고, 내부의 역할분담을 통하여 자치의 경험을 익히고 축적시켜 왔던 것이다. 일본어로 정(政)과 제(祭)를 모두 '마츠리'라고 읽는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대부분이 비슷한 형태로 진행되지만) 역병을 막기 위해 열리는 사와라의 경우 그 안에 초나이라는 지역집단이자 생활집단이 마츠리를 수행하는 실행단위가 된다. 각 초나이는 마츠리에 필요한 경비를 모두 스스로 충당하며, 그 해의 당번이 된 초나이가 전체 운영경비를 좀 더 부담한다. 각 초나이의 내부는 연령집단으로 구분되어 있고, 각자가 맡은 역할이 명확하게 구별되어 있다. 이러한 각 단계를 경험해 가면서 사와라의 주민들은 '사와라인'이 되어 가는 것이다. 물론 전체 초나이들의 관계를 조정하는 것은 그 해의 당번 초나이이다. '내부완결체제'와 '협동 속의 경쟁'을 통해 그들은 지역사회의 자치를 경험하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인해 가는 것이다. 그래서 마츠리가 그들에게는 삶이요, 일상이 되는 것이다. 그들이 스스로를 '마츠리 바보'라고 부르고, 사와라를 떠나고 싶기도 하지만 마츠리 때문에 벗어날 수 없다고 하는, 어쩌면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게 되는 것도, 바로 그것이 그들의 삶 안에 용해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한국의 지역사회에서도 많은 축제들이 경쟁하듯이 열리고 있다. 하지만 그것들이 지속성을 가지고 지역주민들의 삶 속에 자리잡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깊이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마츠리와 축제의 간극 속에 그 답이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임경택(전북대 일문과 교수)

 

▲ 임경택 교수는 일 동경대 문화인류학과를 졸업했다. 동경대 연구원, 서울대 비교문화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2002년부터 전북대 일어일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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