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식·창비·2009>
김두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불멸의 신성가족 : 대한민국 사법 패밀리가 사는 법」(창비, 2009)은 법조인을 포함한 관련 분야의 사람 23명에 대한 심층면접의 결과를 토대로 씌어졌다. 그래서 실감이 난다. 나는 이 책을 '커뮤니케이션 교재'로 추천하고 싶다. 한국인들의 인간·조직·집단 커뮤니케이션의 적나라한 실상이 잘 묘사·분석돼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그런 실상이 '사법 패밀리'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대한민국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데에 있다.
"'연수원 몇기냐?'는 질문은 이미 상대방을 대화 주체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선포나 다름없습니다. 변호사들이 불공정한 재판보다 주로 이런 의사소통 문제를 지적한 것은 흥미롭습니다."(45쪽)
이 대목을 읽다가 슬그머니 웃음이 삐져 나왔다. 오늘 밤, 아니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 방방곡곡에서 "몇기냐?" "몇회냐?"고 묻는 호구조사가 이루어지고 있으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한국인들은 그런 식으로 상호 서열을 확인하지 못하면 불안과 초조에 시달리는 고강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참 착한 사람들이다. 꼭 위 아래를 따져서 선배를 모시거나 후배를 보살피겠다는 그 지극정성에 산천초목도 감동하지 않을 수 없겠다.
그러나 그 바람에 골병드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법조 네트워크에서 배제된 것은 물론 그 물에서 노는 사람의 이름 하나 알지 못하는 사람들 말이다. 그런 사람이 국민의 절대다수(85.8%)임에도 이들은 법에 대해 주눅이 들다 못해 공포감까지 가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증인으로 불려가면서도 아는 사람을 통해 판사에게 잘 봐달라고 부탁하는 웃지 못할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71~72쪽)
이는 한국사회가 '청탁의 천국'임을 시사해준다. 아는 사람은 잘 알겠지만, 한국에선 '촌지'를 받는 것보다는 받지 않는 게 더 어렵다. 촌지를 거부했다간 왕따되기 십상이다. 판사 시절 변호사가 놓고 간 촌지를 거절했다가 오히려 어려움을 겪었다는 권용준 변호사의 말을 들어보자.
"그런 건 아주 관계가 더러워지는 거예요. '이 자식이 이거 참 선배가 준 돈을, 내가 뭐 봐달라고 했어? 새끼 이거 웃기는 새끼네 이거 진짜? 상종 못할 놈이네?' 그런 눈빛으로 사람을 봐요. 지방에서도 한번은 놓고 간 걸 전화해가지고 돌려드리고 그랬더니 아주 분위기 싸늘하고, 아주 분위기 더럽고, 그런 경우가 좀 있었어요. 돈을 거절했다가 평판이 오히려 나빠질 수 있죠. 자기를 모욕줬잖아요. 우리나라 사회는 그런 거거든요. 같이 안 먹으면 나랑 같은 편이 아니란 뜻이거든요."(100쪽)
우리는 부정부패가 나쁘다고 말하지만, 옥석(玉石) 구분은 해야 한다. 아무나 촌지나 뇌물을 줄 수 있는 게 아니다. 촌지나 뇌물도 연고·정실관계라는 파이프라인이 있어야만 줄 수 있다. 그래서 잘 발각되지도 않는다. 서양의 일부 학자들이 펴는 '부정부패 긍정론'의 논거 중 하나는 뇌물이 낙후된 사회의 연고·정실관계를 뛰어넘어 '시장 논리'(?)를 관철시킬 수 있는 수단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한국에선 그런 뇌물은 드물다. 반드시 연고·정실관계를 끼고 들어가야 한다. 어떤 유형의 부정부패가 옥(玉)이고 석(石)인지 각자 판단해 보시기 바란다. 저자의 다음과 같은 분석도 참고할 필요가 있겠다.
"면담을 진행할수록 문제는 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돈도, 골프도, 술도 모두 '거절할 수 없는 관계'에 기인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부 판검사들이 그냥 돈이 좋아, 골프가 좋아, 술이 좋아 아무한테나 접대를 받는 게 문제라면 그것은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일부 썩은 사과는 그때그때 골라내면 그만이니까요. 그러나 우리 법조계는 학벌사회의 정점에 있는 몇몇 대학과 고등학교 출신들로 이루어진 소위 엘리뜨 집단입니다. (…) 이 네트워크 안에서는 일정한 평판이 떠돌고, 그 평판은 판검사, 변호사들의 법조생활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125쪽)
나는 법조인이 되면 정말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이 양심적으로 일할 거야. 그런 꿈을 안고 공부를 했던 이들도 바로 그런 '평판 문화'에 발목이 잡힌다. 그런데 이 '평판 문화'는 법조계 밖에서도 작동한다. 가족·친척·친구들의 '청탁'이 바로 그것이다. 이걸 거절하면 욕을 바가지로 먹기 십상이다.
"청탁문화는 법원·검찰에 한정된 것은 아니며, 특별히 더 심각하다고 볼 이유도 없습니다. 법원·검찰도 우리사회가 작동하는 방식대로 움직이고 있을 뿐입니다. 그야말로 '만인의 만인에 대한 청탁' 사회입니다. 법원·검찰과 맺어지는 모든 관계는 이런 청탁의 통로가 됩니다. 그게 바로 우리사회입니다. (중략) 우리사회에서 어느정도 지위를 차지한 사람들은 누구나 비슷한 문제에 부딪힙니다. 워낙 좁은 바닥이라 모든 사람들은 언젠가 청탁을 할지도 모르는 잠재적 청탁자 위치에 서 있습니다."(157, 173쪽)
이 책의 장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법조계의 부정부패에 대한 일방적인 비판이나 비난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사회가 작동하는 방식과 총체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걸 설득력 있게 밝힘으로써 일반 시민들에게도 할 일이 있다는 걸 역설한 데에 이 책의 독보적인 가치가 있다. 생각해보라. 우리 모두도 똑같이 하고 있는 일을 법조계가 한다고 해서 비난해봐야 설득력이 있을 리 없고 바로 잡힐 리도 없다. 달리 말해 '대한민국 사법 패밀리가 사는 법'은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존재하는 패밀리들의 사는 법과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혹자는 "그런 식으로 '우리 모두가 죄인이로소이다'라고 해버리면 탈출구가 없지 않느냐?"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런 반문을 하기 전에 그간 이런 시각이 얼마나 제시돼 왔는가를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저자가 자신의 결론에 '억지로 찾아본 희망'이라는 부제를 붙인 것도 그런 반문을 의식했기 때문이리라.
매년 법원과 검찰의 인사가 있기 직전이면 변호사 사무실에 사건이 줄어든다. 모든 의뢰인들이 변호사가 담당 판검사와 가까우냐를 우선 고려하기 때문이다. 브로커의 문제는 어떤가. 길 가다가 간판 보고 변호사를 찾아가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게 우리 현실이다. 의뢰인의 무지와 욕심도 현 시스템을 고착시키는 주요 이유라는 것이다.(142, 194, 208쪽) 저자가 책의 마지막 결론으로 "시민이 희망이다"라고 외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기 권리를 지키고자 목소리를 높이는 시민의 용기와 지혜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법조인들이 절대로 시민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알아서' 나서주지 않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리가 도입한 근대 사법씨스템은 점잖은 사람이 무조건 손해보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판검사와 변호사들을 두려워해서는 자기 권리를 찾을 수 없습니다. (…) 시민들이 두려움의 장막을 걷고 법조계를 향해 말붙이기를 시작하는 순간, 신성가족은 눈 녹듯 해체될지도 모릅니다. 우습지만, 별다른 정답을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 그나마 이게 저의 가장 강력한 희망사항입니다."(326쪽)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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