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4-12-12 04:49 (Thu)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문화마주보기
일반기사

[문화마주보기] "통섭은 안돼, 한예종은 하던 거나 하라?" - 김윤태

김윤태(우석대교수·유아특수교육)

현대 무용은 인습과 형식에서 벗어나 해방된 몸으로 춤을 춘다. 인간의 정신과 영혼의 자유로운 표현을 추구한다. 현대무용의 대표적인 춤꾼 세인트 데니스는 동양의 정신적인 요소가 담긴 춤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그는 특히 동양의 무녀의 춤에서 영감을 얻었다. 무녀가 추는 춤에서 자신이 표현하고자 했던 영혼의 소리를 발견했다. 한자의 '무'는 양 소매를 자유롭게 늘어뜨리고 기교와 형식을 초월하여 신명나게 춤을 추는 무녀를 표현하고 있다. 데니스는 자신도 모른 채 서양 춤꾼으로서는 최초로 무녀의 모양을 본떠 만든 한자 '무(巫)'가 품고 있는 비밀을 푼 셈이다.

 

이사도라 던컨에 의해 촉발된 유럽 현대무용은 루돌프 폰 라반에 의해 화려하게 꽃을 피운다. 무용수인 라반은 탁월한 이론가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무용 이론에만 천착하지 않고 다양한 학문과의 학제간 연구를 중시했다. 그는 무용에 운동학의 움직임 이론과 인문지리학의 공간이론 뿐 아니라 철학, 수학, 기하학, 해부학 이론을 접목시켰다. 음악을 활용하여 무대기술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키기도 했다.

 

대학에서 학제간 통섭 교육은 이제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우리나라의 많은 대학에서도 학과가 없어지고 학부제가 시행되고 있는 것도 그 영향이다. 어떤 대학에서는 심지어 인문학부와 자연학부도 구분하지 않는 자유전공학부가 생긴다는 고무적인 소리도 들린다.

 

현대무용의 대가 데니스가 자신의 춤을 통해 영혼의 소리를 표현할 수 있었던 것도 자신의 춤만을 고집하지 않고 과감하게 동양의 무녀의 춤을 응용한 결과이다. 라반이 유럽 현대무용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 것도 바로 무용을 초월하여 학제간 통섭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소위 '한예종 사태'이후 통섭이 세간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한예종의 통섭교육은 예술 장르간 그리고 예술과 과학기술간의 다양한 소통가능성에 대한 성찰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한예종에서 통섭교육을 주도했던 심광현 교수에 따르면 통섭은 어원상 "함께 도약하기"라는 의미이여 "수많은 지식들이 양팔을 벌려 함께 도약하면 다양한 유형의 지식들 간의 결합방식이 나타날 수 있다. (...) 이런 유형의 도약의 귀결은 미리 결정될 수 없지만, 반복되다 보면 마치 여러 실들이 꼬이듯 여러 지식들이 중첩적으로 연결되어 수많은 지식들 간에 '가족적 유사성'이 형성될 수 있다." 또 "이렇게 얻어지는 가족적 유사성은 결국 전체 지식들 사이의 소통을 강화하고 확산하게 될 것"이다.

 

정부는 틈만 나면 소통을 이야기한다. 촛불집회와 같이 무슨 일이 터졌다하면 소통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마치 정부 현안이 소통인 것처럼 들린다. 그걸 감안하면 소통을 지향하는 통섭교육을 기치로 내걸었던 한예종은 정부의 시책을 앞장서서 실행한 셈이다. 상을 주어도 모자랄 판이다. 그런데 최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한예종에 대해 "하던 일이나 하라"며 통섭교육 중단을 지시했다고 한다. 정부와 관료들의 생각이 얼마나 엇박자가 나고 모순을 이루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김윤태(우석대교수·유아특수교육)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