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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주보기] 지역문화가 살아나는 참 쉬운 방법 - 이명훈

이명훈(고창농악보존회장)

'아리-씨구나----앗. 어 어허어--야-아----암. 모 오호-----홋. 에 에헤--'

 

지난 8월 9일 고창군 성송면 학천리 논에서 울려 퍼졌던 풍장소리 후렴이다. 기계화 이전에 농사짓던 때였다면 이맘때쯤 각 마을마다 만두레 풍장굿 소리가 울려 퍼졌을 것이다.

 

전라도는 넓은 평야지대이기 때문에 들노래가 많이 발달되어 왔다. 전라도 서부평야지대는 선후창 방식의 들노래, 동부산간지역은 교환창 방식의 민요가 주로 성행했다. 노동이 이루어지는 곳에는 항상 노동의 능률을 높이기 위해서 일노래가 존재했었다. 전라북도에서 잘 알려진 들노래로는 1972년과 2002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를 통해 대통령상을 수상하고 지방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익산삼기목발노래와 순창금과들노래이다. 한 지역에서도 마을마다 소리가 다르게 불리워질만큼 풍성했던 전라도 들노래는 문화재 지정으로 인해 위의 두 지역 들노래가 대표격이 되었다. 그러나 익산삼기목발노래는 2005년 보유자 박갑근 선생의 타계로 인해 문화재 지정이 말소가 됨으로써 행정적 지원이 없어 사라질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다행히도 마을의 젊은 사람들이 소리를 되찾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어서 후대에 까지 전해질 수 있는 좋은 전범이 되고 있다고 본다. 현장에서 불리워지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소리를 하는 어르신들이 점점 사라지면서 그 풍성했던 소리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는 것이 사람을 통해서 전해지는 우리의 무형문화유산의 현 주소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동안 민속학자들에 의해 민요는 많이 조사되어서 자료로 많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그 민요들이 영원히 자료로서만 남아있을 것 같은 우려는 나만의 생각일까? 사람에 의해 소리가 불리워지고 사람에 의해서 전해져왔던 민요가 현재에도 살고 후대에까지 사람들에 의해 불리워질려면 현재가 중요하다. 학계에서든 행정에서는 아니면 개인적으로든 각 지역의 민요를 찾아내고 현재 민요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살아계실 때 함께 불리워져야 한다. 이번에 고창에서의 풍장소리가 그러했다. 성송면 향산리에 살고 있는 78세 홍순삼 선생이 선창을 하고 같은 마을사람들을 포함하여 젊은 사람들이 함께 받는소리를 했는데 선창자가 3명이었다. 78세 어르신과 30대 젊은이 둘이였으며 서로 노래 전장을 보내면서 주고받는 그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무대에서나 경연장에서나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었던 들노래를 실제로 현장에서 해보니 그렇게 재미날 수가 없었다. 저절로 흥얼거려지고… 그 소리들이 점점 퍼지면서 주의의 모든 분들이 함께 부르는 그 소리에 저절로 애정이 생기게 되었다. 우리동네의 소리니까 더 정감이 가게 되었고 자꾸만 부르게 되었고 부르다보니 저절로 흥이 생긴 것이다. 각 지역의 소리는 그렇게 지역 사람들이 애정을 가지고 자부심을 가지고 그렇게 살아나야 하며 직접 해 보니까 참으로 쉬운 일이었다. 우리네 삶과 함께 했던 우리의 소리는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전라도 들녘 곳곳마다 살아 숨쉬며 대대손손 내려왔던 우리네 소리가 곳곳에 울려 퍼졌으면 좋겠다 굿과 함께… 일년 농사과정 시기마다 그 시기에 맞는 우리네 노동요를 지켜내는 일은 우리네 일상 속에서 자꾸만 부를 수 있게끔 우리 모두 일상적으로 유행가를 흥얼거리듯 흥얼거리면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을 듯 하다.

 

/이명훈(고창농악보존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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