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4-12-01 19:37 (일)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문화 chevron_right 문화일반
일반기사

[강준만의 책으로 읽는 세상] (22)미국의 동물학자 크니프의 '부자'

부자는 '특수한 동물'…금력과 권력에 성공한 사람 만나면 패배주의 젖지말고 의연한 대처를

지난 4월 포브스코리아가 조사한 '한국 100대 부자'의 '커트라인'은 1650억원이었다. 여기서 0을 하나 빼도 부자 소리를 듣지만, 두 개를 빼면 어렵다. 16억5천만원이면 웬만한 지방도시에선 부자 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 몰라도, 서울 강남으로 가면 번듯한 아파트 한 채 값도 안된다.

 

부자! 가슴 설레는 단어다. 2002년 선보인 한 신용카드사의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가 최고의 덕담이 되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으리라. 요즘 부자야 타고나는 거라고 하니(부모를 잘 둬야 가능하다는 뜻) 부자 꿈은 포기하더라도 부자 친구라도 하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닌게 아니라 주변의 누군가가 부자 친구 이야기를 하면 듣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몇 번 듣다보면 한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 한마디로 이야기해서 부자들이 짜다는 것이다. 좀 거칠게 말하자면, "있는 놈들이 더 하더라"는 속설이 꼭 입증되더라는 것이다. 명색이 친구라면 금전적 도움을 줄 법도 한데, 그건 전혀 없고 기껏해야 술이나 거하게 사는 게 전부라나.

 

부자들은 왜 그럴까? 미국의 동물학자 리처드 코니프(Richard Conniff)의 ??부자??(이상근 옮김, 까치, 2003)를 읽으면 그 의문이 풀린다. 이 책을 읽고나면 부자는 보통의 인간과는 좀 다른 동물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우선 부자들이 짠 이유부터 알아보자. 저자는 여러 이유를 제시하긴 했는데, 한마디로 요약해보자면 "인색함이란 부자가 될 수 있는 사고방식의 일부"라는 사실 때문이다.

 

그런데 술을 산다거나 하는 향연을 사치스럽게 베푸는 이유는 무엇인가? 저자는 "오늘날 사교계의 명사들이 일류 손님들을 초대하기 위하여 결사적으로 다투면서 파티를 경쟁적으로 열고 있는 현상에 학자들이 주목하지 않는 것은 안타까운 노릇이다."고 개탄하면서, 향연은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고 보유하는 수단이었을 뿐만 아니라 전쟁의 의식화된 대용수단이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낭비적인 접대는 뇌물만큼 효과가 있다는 이유도 있다. 그러니 이것만큼은 몸에 밴 인색함과는 달리, 펑펑 써도 일종의 투자라는 의식이 부자들에겐 있는 것이다.

 

아무리 인색한 부자라도 집 만큼은 으리으리한 호화판을 선호한다. 왜 그럴까? 코니프는 "영장류의 생활에 지배행위는 거의 호흡만큼이나, 그리고 아마도 잠재의식만큼이나 기본적일 것이다."라고 말한다. 달리 말해, 부자들의 넓은 집은 방문객들을 압도함으로써 소기의 지배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부자들 중엔 집 입구에서 차를 타고도 한참을 들어가야 할 만큼 넓은 집을 갖고 있는 이들이 많다. 그런 집에 살면서 어린 시절 친구들을 집으로 데려온 어느 여성의 말이 재미있다.

 

"그들의 말과 표정이 참으로 재미있었습니다. 보통은 그저 아무 말 없이 조용했습니다. 자동차 진입로로 차를 타고 들어오면 친구들이 더욱 더 조용해졌습니다.…친구들은 자기 이름을 기억하는 것조차 어려웠습니다."

 

대기업 최고경영자나 고위 공직자들의 집무실이 넓은 것도 바로 이런 효과와 무관치 않다. 게다가 집무실 앞에 늘씬 하고 아름다운 여비서가 한 명도 아니고 두세명 버티고 있으면, 방문객은 따질 일이 있었다 하더라도 기가 꺾여 고분고분해지기 마련이다.

 

보통사람을 겸손하게 대하는 예의 바른 부자들도 많지만, 그게 그들의 본질은 아니다. 부자의 본질은 지배욕이다. 돈을 지배했듯이, 사람들을 지배하고자 하는 것이다. 성공은 높은 테스토스테론(남성 호르몬) 반응을 불러오고, 이것은 다시 더욱 지배적인 행동을 낳고, 이는 더 많은 성공을 불러온다. 생물학자들은 이것을 '승자 효과(winner effect)'라고 부르는데, 저자는 바로 여기서 부자의 정체성을 찾는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보통사람들이 기꺼이 그런 정체성 확인 게임에 적극 동참해준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묻는다.

 

"우리는 왜 부자들의 부당한 요구를 다 들어주고, 그들의 오만으로 인해 상처받고, 그들의 인심에 대하여 차라리 우리 자신의 가족들을 위하여 남겨두는 것이 좋을 성 싶은 충성심으로 보답하고, 심지어는 그들을 올해의 시민으로, 예술의 후원자로, 지구의 친구로, 박애주의자로 존경까지 하는가?"

 

돈 때문인가? 꼭 그렇지는 않다. 부자를 우러러본다고 해서 자신에게 돈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저자는 동물학자답게 동물적 본능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우리는 부분적으로는 두렵고, 보호가 필요하며 사회적 위계질서를 갈망하는 것이며, 그러한 갈망은 영장류의 진화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고 또한 모든 어린이의 생활에서 반복되고 있다.…사회의 위계질서에 자신을 적응시키는 것은 우리들에게 안전감을 가져다 주기 때문에 우리는 정상에 있는 사람들을 섬김으로써 특별한 기쁨을 얻는다."

 

가장 흥미로운, 너무 흥미로워 논란의 소지가 있는 대목은 저자가 '사회적 위계질서의 혜택'을 역설한 것이다. 그는 "적어도 이론상으로 위계질서는 한 집단 내의 개인들에게 더욱 효과적으로 역할을 수행하도록 한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 연구에서 연구자들은 몇몇 병아리 무리들에게는 모이 먹는 순서를 방해받지 않고 내버려두고, 다른 무리들의 경우는 어느 병아리가 경쟁을 통해 우두머리가 되었건 간에 매주 그 우두머리를 제거하여 그들의 먹이 먹는 순서를 고의적으로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 결과 위계질서를 방해받지 않은 무리들의 경우 싸움질도 덜할 뿐만 아니라 부하들도 모이를 더 많이 먹을 수 있었고, 체중이 더 빨리 불었을 뿐만 아니라 달걀도 더 많이 생산했다."

 

인간도 병아리와 다를 바 없다는 말인가? 그렇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그는 "일단 위계질서가 정해지고 나면, 그 집단은 더 이상 피 흘리는 것은 피하고 대신에 지배 또는 복종이라는 의식화된 제스처로 계급을 인정한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부자는 멋을 부리고 고약한 농담까지 한다. 그의 부하들은 그의 주위에 모여서 부자의 지위를 알아주는 듯 웃음을 터뜨린다.…부하들도 자주 자신들의 지위에서 위안을 발견하며, 귀속감과 자신들의 한계를 재확인한다. 부자이자 세력 있는 사람들은 우리들에게 신비로운 매력과 중요한 인물임을 상상함으로써 느낄 수 있는 연상(聯想)이라는 스릴을 맛보게 하기 때문에 우리는 또한 부하라는 사실을 즐기기도 한다."

 

뭐 심각하게 생각할 건 아니고, 가벼운 풍자로 읽으면 좋을 것 같다. 공감이 가는 점도 없지 않다. 딱히 내가 얻을 건 없다 하더라도 금력과 권력에서 성공을 거둔 사람을 만나면 괜히 겸허해지는 경험을 해본 사람이라면 느낄 수 있는 공감이리라. 인간세계를 동물학이나 생물학적 관점에서 이해하고 분석하는 건 위험한 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 어떤 다른 분야도 제공할 수 없는 안목을 열어주기도 한다.

 

실현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부자 되세요'라는 덕담에 매달리기보다는 '부자는 특수한 동물'이라는 시각을 갖고 의연하게 살아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마저 패배주의라고 한다면, 한국사회엔 패배주의가 좀더 흘러 넘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웬만큼 잘 살면서도 부자가 되기위해 피폐하게 사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전북일보 [email protected]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