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훈(고창농악보존회장)
지난 9월 6일 서울에 있는 동덕여대에서 고창굿 한마당이 성대하게 치러졌다. 서울 하늘아래에서 풍물굿을 치기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 힘든 현실에서 그날 열린 굿판은 그 굿판에 모인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신명의 도가니로 끌어들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매년 9월 초순이 되면 세대와 지역을 아울러 하나 되는 고창굿 한마당이 열리는데 올해로 일곱 살이 되었다.
처음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해를 거듭할수록 성황리에 굿판이 벌어지는 데는 준비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두 달 전부터 정성스럽게 소원지를 쓰고 만장을 쓰고 각자 준비한 굿판을 위해 모임을 갖고 연습을 하고 서로 교류를 하면서 서로의 마음들은 더욱 돈독해 진다. 사는 곳도 다르고 연령대도 다르지만 이들을 하나로 엮어내는 것은 굿이었다. 굿은 그렇게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즐겁게 놀아지게 하는 힘이 있다. 굿은 각 지역마다 마을마다 이루어졌던 작은 축제였다. 오늘날 마을에서 작은 축제들이 사라지는 가장 큰 이유는 굿치는 마을사람들이 점점 없어지기 때문이다. 당산제를 올리거나 줄을 비벼 줄다리기를 하거나 백중날 막걸리 한 동이씩 내놓고 노는 날에도 항상 굿 소리와 함께 했었는데 그 굿 소리가 점점 사라지면서 마을마다 성행했던 굿 축제가 어느 순간 사라지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작은 굿 축제가 살아나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그것은 굿 축제를 준비하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에 따라 달라지는데 가장 큰 힘은 굿을 치는 주체와 굿을 향유하는 주체가 함께 준비하는 것이다. 고창굿 한마당을 예로 들자면 고창군에서는 행정적으로 예산을 뒷받침 해주고 고창농악보존회원들은 한마당의 문을 여는 문굿을 준비하고 고창농악 전수관 에서는 행사장 무대 셋팅과 음식을 준비하고 그리고 고창굿 한마당을 즐기기 위해서 고창군 14개 읍,면에서 농악 동호인들이 버스를 여러 대 준비하여 서울로 출발한다. 서울에서는 고창농악 대학생 전수생들과 사회풍물패가 각각 젊은 굿판을 준비하고 고창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을 맞이하기 위해 맞이굿을 쳐준다. 한마당을 축하하기 위한 축하공연도 여러 풍물 명인들을 초대하여 멋진 공연을 준비한다. 재경 고창인들은 고향의 문화 향수를 느끼기 위해 매해 빠지지 않고 많은 분들이 오셔서 굿전도 내고 하루 종일 고창농악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고창인 으로서 고창의 전통문화에 자부심을 느끼는 날이 된다. 또한 고창을 모르는 외부사람들도 고창농악을 통해 고창의 전통문화를 이해하게 된다. 그렇게 하루종일 고창농악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모여 작은 정성을 모으고 막걸리 한잔 기울이면서 작은 신명의 축제의 장에 몰입하게 된다. 그 옛날처럼 굿으로 유명한 어느 동네에서 굿 축제가 열리면 집집마다 쌀이 한 가마씩 없어질 정도로 구경꾼들이 많이 모여드는 축제는 아니지만 도심에서 벌어지는 두 달 동안 준비한 굿판은 그렇게 대 성황리에 마치게 된다. 내년의 고창굿 한마당을 기약하며 고창으로 내려오는 길은 발걸음이 절로 가벼워진다. 내년에는 서울 하늘 어느 곳에서 아름다운 작은 굿 축제가 열릴지 미지수지만 매해 한마당에 다시 찾고자 하는 마음들은 해가 갈수록 늘어남을 알 수 있다. 그러한 기대감 때문에 굿치는 것이 즐겁고 준비과정의 힘듦도 잊게 만든다. 전국 어느 도심에서든지 지역에서든지 굿 소리와 함께 하나가 되는 작은 축제들이 풍성해졌으면 하는 바램 이다. 그 옛날 마을 사람들을 하나로 엮어내고 마을 굿의 자부심을 느끼게 해줬던 마을의 작은 굿 축제처럼….
/이명훈(고창농악보존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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