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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주보기] 일본인의 가업 - 임경택

임경택(전북대 일문과 교수)

한국인들이 일본인에 관해 이야기할 때 약간의 칭찬조로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들의 가업(家業)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다. 동경대학을 졸업한 수재가 고급관료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내려와 대를 이어 국수집을 경영한다든지 하는 등의 이야기이다. 그것이 마치 일본인의 근면성과 성실을 상징하는 것처럼 회자되곤 하지만, 실제로 사회구조의 산물이라는 것을 아는 한국인은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다.

 

이러한 가업의 연원은 고대의 가직(家職)에까지 거슬러 갈 수도 있지만, 가업이 제도로 정착하게 되는 것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개혁부터이다. 도요토미는 집권 후 전국에 걸쳐 병농분리정책(刀狩令)을 실시하여, 일본 열도의 주민들을 직업별로 거주하게 하였다. 그리고 거주단위를 무라(村)와 초(町)로 나누고 자유롭게 상호이동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이때부터 일본인의 각 이에(家)는 고유한 직업을 갖게 되었고, 신분과 주거와 직업이 일치하는 사회구조 속에서 살아가게 되었으며, 그것이 결국 가업이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체제는 도요토미의 뒤를 이어 집권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도 이어받아, 메이지 유신이 성립되는 시기까지 300년 가까이 지속되었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이른바 가업이 성립되었다. 일본의 이에가 혈연집단이라기보다는 경영체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지니고 있었던 까닭에, 가업은 당연히 그 집을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고, 정체성의 근간이 되었다. 즉, 혈연적 계보를 중시하는 한국사회와는 달리, 일본의 이에는 그 자체가 하나의 인격적인 성격을 띠고, 그것이 유지되어야만 그 안의 구성원들이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이에의 유지를 보증하는 것이, 가업·가산·가옥의 온존과 유지이다. 그 이에의 가장은 자신의 대에 그 이에를 잘 유지하여 다음 세대에 넘겨주는 것이 최대의 사명이자 임무이다. 실제로 내가 현지조사 중에 만난 한 가게의 주인에게 가업이란 무엇인가 물어보았을 때, 그는 '내 생명'이라고 대답하였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그 이에인 것이다.

 

습명제(襲名制)라는 제도에서도 이러한 관념은 뚜렷이 나타나는데, 습명제란 초대 당주부터 동일한 이름을 계속 이어가는 것이다. 예를 들면, 임진왜란 때 끌려간 도공 중 유명한 심수관이란 분이 있다. 그런데 몇 해 전 한국을 방문한 분도 심수관인 것이다. 후자는 14대 심수관인 것이다. 이것은 바로 이에의 유지가 최대의 목표이고, 그 이에를 현세에서 담당하는 가장은 그것을 망하지 않게 하는 것이 최대의 임무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또한 이에의 유지가 가업과 가산 및 가옥의 유지로 상징되는 만큼, 이에를 존속시키는 데 가장 적합한 사람을 차세대의 가장으로 선정하고, 뒤를 이어가게 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혈연관계가 중요하게 개입될 소지가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다. 데릴사위로만 이어가는 집이 있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이와 같이, 문화는 역사적 시간 안에서 인간이 만들고 학습해 오는 것이지, 결코 본성적으로 애초부터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해야만, 타문화를 마주보는 것도 가능해 질 것이다.

 

/임경택(전북대 일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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