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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주보기] 여왕의 시대 - 이윤애

이윤애(전북여연 공동대표)

요즘 드라마 '선덕여왕'을 보는 재미에 푹 빠졌다. 시청률이 40%가 넘는 드라마는 봐줘야 한다. 왜? 안보면 대화가 안 되니까. 물론 논란이 많았던 화랑세기를 근간으로 하고 픽션임을 전제로 하는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사실이냐 왜곡이냐 논쟁의 중심에 있으나 그건 중요하지 않다. 우선 드라마 전개가 속도감 있고, 각각의 캐릭터들에 흠뻑 빠져들 수 있어 재밌고, 덕만의 탁월한 지혜와 비범한 담력은 물론 명철한 수단까지 겸비된 정치력에 감탄한다. 그렇다. 드라마는 재밌어야 한다. 말초감각을 자극하는 재미가 아니라 두뇌를 자극하는 재미여야 함은 필수적이다. 화백회의에서는 풍월주에 대한 인준청문회도 열리고, 드라마 속의 캐릭터와 정치인을 등치시켜 보는 등 현실정치에서 지도자의 덕목이나 정치상황과도 비교할 수 있어 그 재미가 쏠쏠하다. 얼마 전 제1야당의 워크샵에서도 미실국회와 덕만국회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고 한다. 정치인들도 정치의 지향점을 드라마에서 찾는가 보다.

 

가끔 사람들은 역사적 착각을 주문받기도 한다. 여왕의 시대에는 사회적으로 여성의 권한이 컸으며 여성의 역할이 확대되었을 거라고 기대치를 높이면서 말이다. 고대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에서 오늘날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까지 세계사 어디를 봐도 여왕의 시대에 전체 여성의 권한과 역할이 확대되고 여성들의 삶이 나아졌다는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가부장적 권력놀음에 여자가 왕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시대적 당위만 존재했을 뿐이다.

 

그러나 여왕의 정치력은 탁월했다. 당대의 뛰어난 수학자이고 화학자, 철학자였던 클레오파트라는 호시탐탐 노리는 로마제국 정치꾼들에 맞서 탁월한 재능과 정치전략으로 이집트를 안전하게 통치했다. 남존여비 사상이 팽배했던 고대 중국봉건사회에서 측천무후는 수렴청정의 준제왕 자리가 아니라 중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여황제로 등극한 인물로서 합리적이고 개혁적 치세(治世)로 강한 정치력을 과시했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오스트리아의 어머니로 칭송될 정도로 중세유럽의 영토분쟁 속에서 전쟁을 최소화 시키며 사회전반의 부흥기를 일궈낸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제였다. 분명 여왕들은 역사 속 대다수의 남성 황제들보다 합리적인 정치력을 발휘했으며, 자국의 사회적 진보를 가져왔고, 국가안정이나 경제발전에 탁월한 공헌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사치와 향락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여왕을 기록하고 평가할 때 그들의 통치력보다는 클레오파트라의 콧대, 측천무후의 남성편력 등 왜곡된 여성성에 확대경을 들이대는 사관들에 불편할 따름이다.

 

진정한 정치력을 갖추고 젠더감수성을 공유할 수 있는 여왕을 갈망하는 우리들에게 대한민국 여성부장관이 새로이 내정되었다. 여성운동에 관여한 적도 없고, 여성관련 학문업적도 없어 여성부장관으로서 전문성이 결여되어 부적절하다는 여성단체의 논평에, 청와대 관계자는 '한식조리의 세계화에 앞장섰고, 가정의 가치를 높이는 역할을 해왔다'고 응수했다. 식생활분야 전문가이기 때문에 여성부장관에 적임자라는 친절한 설명이다. 2001년 정부조직법 개편에 따라 신설된 여성부와 여성부장관의 역할에 대해 2009년 우리는 다시 학습해야 할 것 같다.

 

/이윤애(전북여연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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