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환(전북도 홍보기획과장)
나는 막걸리를 좋아한다. 남들이 알아주는 애주가도 아니고, 술자리에서 먼저 술을 권할 만큼 주량이 센 것도 아니지만, 막걸리만큼은 술이 아니라 '먹거리'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런 까닭에 누가 막걸리 한잔 마시자 하면 왈칵 달려들고 싶은 생각부터 드는 것이다. 술을 벗해 인생을 살았던 시인 천상병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막걸리에 대해 이런 시를 썼다. '막걸리는 술이 아니고/밥이나 마찬가지다/밥일 뿐 아니라/즐거움을 더해주는/하나님의 은총인 것이다.'(천상병 '막걸리'중)
밥이자 즐거움이자 신의 은총이기까지 한 막걸리. 시인처럼 거창한 의미를 부여해서가 아니라 나는 그저 추억이 좋아 막걸리를 다시 찾기 시작했다. 수 십 년 간 전주를 떠나 살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 나를 반겨주는 것이 막걸리였다. 까까머리 고등학교 시절에 가발까지 불사하고 막걸리 집을 쫓아다녔던 나로서는 참으로 반가운 조우였다.
이 막걸리가 요새 뜨고 있다고 한다. 이미 전주에서는 3-4년 전부터 막걸리 바람이 불었는데, 이제서야 서울과 일본에 막걸리 소식이 닿은 모양이다. 올 4월 도쿄에서 열린 음식박람회에서 최고 인기상품이 막걸리였다고 한다. 서울 대학가에서도 막걸리의 인기가 급상승중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막걸리와 에스프레소 커피를 섞은 '에스프레소 막걸리'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그러나 역시 막걸리 맛의 진수는 '탁주'에 있다고 나는 믿는다. 요즘엔 더러 '맑은 술'도 권하는 모양인데, 맑은 술이면 어디 그게 청주이지 탁주인가? 막걸리는 역시 '막 거른' 술이라야 제 맛이다. 그러나 막 걸렀다고 해서 다 똑같은 맛은 아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인공적으로 발효를 시켜 빨리 생산한 막걸리는 뱃속에 가스가 차고 트림이 많이 나온다고 한다. 막걸리의 80%는 물이기 때문에 물이 가장 중요하고, 발효기술이 두 번째로 중요하다고 한다.
예부터 물맛이 좋은 전주는 막걸리 맛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의 전통이 있다. 어디 전주뿐이랴. 물 좋은 장수 번암, 산서, 임실 관촌도 막걸리의 본고장으로 이름깨나 날리는 곳이다. 통칭 전주막걸리는 그 화려한 '안주발'로 인해 전국적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흥에 취하고, 안주에 취하고, 맛에 취하고, 값에 취한다'는 말이 술꾼들 사이에 회자될 정도다. 이에 발맞춰 전주시에서도 한옥마을에 전통주막을 조성한다고 하니 은근히 기대가 된다. 이제는 막걸리집 앞에서 "이리 오너라!" 호령하면서 주모를 부를 날도 곧 오게 될 것 같다.
이미 전주막걸리가 세계를 호령하기 시작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려온다. 지난 9월 25일, 전주막걸리의 해외수출이 시작된 것이다. 발효기술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유통기한을 열 달로 늘렸다고 한다. 특히나 반가운 것은 전라북도 농가에서 재배되는 우리밀 20%, 우리쌀 80%로 막걸리를 빚는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농가에도 도움 되고 좋은 품질로 승부할 수 있는 결정적인 해법이 아니겠는가.
이번 추석 민심의 핵심은 '쌀값 하락'이었다는 결과가 나왔다. 쌀 소비가 최대현안으로 부상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쌀막걸리가 부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까. 청와대에서도 막걸리로 건배를 하는 마당인데, 지금 막걸리가 살아나지 못한다면 대체 언제 '막걸리 르네상스'가 일어날 것인가. 곤두박질치는 쌀값 때문에 애써 키운 벼를 갈아엎는 지금, 쌀막걸리의 화려한 부활을 기대해 본다.
/전성환(전북도 홍보기획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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