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일반기사

[송영애의 식탁 위의 수다] ③숟가락 변천사

고려중기 이후 오늘날 같은 모양 갖춰

전 세계인 중에서 손으로 직접 음식물을 섭취하는 인구가 40%, 포크와 나이프로 식사를 하는 인구가 30%, 그리고 젓가락을 사용하는 인구는 나머지 30%의 비율이라 한다.

 

아시아에서 중국과 일본은 젓가락을 주로 사용하고 숟가락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데 반해 한국은 숟가락과 젓가락을 함께 사용하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숟가락은 우리 민족의 식생활에서 식기에서 입까지 음식물을 운반하기 위해 고대부터 이용되어져 온 우리의 대표적인 식음(食飮) 용구이다. 숟가락은 역사와 전통을 가진 만큼 우리의 식문화를 역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식도구로 한국의 상차림에서는 젓가락과 나란히 상에 올리도록 되어있다.

 

한국인이 숟가락을 중심으로 하는 식음 관습을 형성하고 있는데는 습성(濕性) 음식을 선호하는 경향, 오랜 기간에 걸친 보리·밀·조·피 등의 잡곡과 같은 찰기가 없는 주식을 섭취해 온 것, 대식적(大食的) 전통, 고속형(高速型) 식음 관습, 온식(溫食) 선호의 기호에 그 원인이 있다는 주장이 맞을 것이다. 국과 같은 물이 많은 음식이나 찰기가 없는 잡곡밥 등을 빨리, 많이, 따뜻하게 먹는 데는 숟가락이 젓가락보다 기능적이고 효율적인 식음용구가 된다.

 

우리나라 최초의 숟가락은 청동기시대의 유적으로 추정되는 함경북도 나진 초도에서 출토된 동물의 뼈로 만들어진 숟가락으로 술잎의 길이가 11cm, 너비가 5.7cm, 전체 길이가 28cm에 이르며, 술잎의 끝이 뭉툭하여 사람의 입에 넣기에는 다소 크기가 크다. 이는 아마도 숟가락이라기보다는 주걱에 가까운 조리 용구였을 가능성이 더 크고, 이 시대에는 주걱 또는 국자와 숟가락을 혼용했을 가능성도 높다고 한다. 이후 출토된 숟가락은 주로 청동제품이었고, 놋쇠제품, 백통제품, 은제품으로 변천되었으며 형태도 시대에 따라 바뀌었다.

 

통일 신라 시대에는 긴 자루에 술잎이 원형인 숟가락이 많이 보이며, 말기에 이르면 술잎이 동그스름하면서도 사각형에 가까운 숟가락으로 변하게 되었다. 고려시대로 접어들면서 숟가락의 모양은 우아하고 가냘프고 가볍게 되었으며, 술자루는 가늘고 길게 활 등처럼 굽어서 그 선의 아름다움은 고려시대의 사기 그릇들이 지닌 흐르는 듯한 선을 닮아 측면에서 본 곡선이 S자형을 이룬다. 고려 중기 이후에는 술자루의 심한 곡선은 다시 완만해지고, 길어지고, 두꺼워지고, 곧아지고, 술잎은 나뭇잎 같은 타원형을 이룬다. 이때부터 숟가락의 잡는 쪽이 점점 기울어지면서 오늘날과 같은 모양을 갖추게 되었다. 근대 이후에는 스테인레스가 발명되어 수저 산업에 널리 사용되어 왔다. 스테인리스는 은에 비해 비싸지 않고, 백금과 같은 아름다운 빛깔과 단단한 속성, 관리의 편리성과 함께 음식에 잘 반응하지 않는 점 등의 높은 실용성으로 인해 현재 수저 뿐 아니라 전 주방용품의 대표적인 재료로 각광을 받고 있다.

 

우리의 숟가락은 초기 뼈로 만들어진 주걱 형태의 숟가락을 제외하고는 금속성 수지를 계속 사용해왔다. 이는 한국의 문화적 특성과 관련이 있다. 한국에서는 삼국시대까지만 해도, 철제품을 소유한 정도가 권력과 지위에 비례했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철제품은 곧 권력의 상징이다. 이 때문에 고분 속에는 특별한 형태도 아닌 쇳덩어리를 넣어둔 사례를 많이 접할 수 있다. 자연히 쇠붙이 숟가락은 권력자들의 용품이었다는 추론이 가능하며, 그러다가 차츰 서민층에게로 확산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 시대에서도 신분상향 의식이 강하게 발동되었을 것이고, 이 과정에서 하층민들도 상층 사람들이 사용하던 금속성 수저의 사용을 원하면서 일반화 되었을 것이다. 역시 문화는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법이다.

 

토제숟가락, 나무숟가락 또는 사기숟가락은 식사시에 숟가락이 주가 되는 한국문화에서는 실용성이 적을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런 숟가락은 금속성 숟가락에 비해서는 자루가 쉽게 부러져 실용성 면에서 떨어지고, 나무숟가락은 초상시에 망자에게 반함(飯含)을 하는데 쓰는 숟가락이라는 것으로 인식하여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인처럼 많은 양의 밥과 국을 숟가락으로 떠서 먹는 한, 술자루를 강하고 견고하게 만들어야 했고, 그 결과가 금속성 숟가락이라는 것으로 보는 것도 매우 타당하다고 하겠다. 역으로 중국과 일본에서는 나무 또는 사기 숟가락을 사용하였던 것은 숟가락 중심이 아닌 젓가락 중심의 식음방식으로 인해 가능했을 것이다.

 

/송영애(푸드코디네이터, 전주기전대 출강)

 

전북일보
다른기사보기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100
최신뉴스

포토전주시 기독교연합회, "尹 즉각 하야하라!"

전북현대전북현대·신협, 2024 사랑의 김장김치 나눔 봉사

문화일반전북시인협회, 제25회 전북시인상 시상식 및 제1회 신인상 시상식 성료

경제일반의무 규정 강화에 시공비 상승…내년 전북 아파트 분양가 '2000만원' 육박하나

경제일반전북 제조업 생산 증가했지만 소비·수출 부진…실물경제 '불균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