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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책으로 읽는 세상] 'TV 광고 아이들: … 키즈마케팅'

(27)<수전 린 지음, 김승옥 옮김, 들녘, 2006>'공포의 초딩'과 '키즈 마케팅'

(이야기 1) "한국인터넷진흥원의 정보화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초등학교 1∼6학년의 인터넷 이용률은 99.3%로, 사실상 대부분의 초등학생이 인터넷을 활용하고 있다.…쥬니버 지식인 코너에는 '아빠 몰래 야한 동영상을 봤는데 섹×를 하고 싶어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같은 질문까지 올라오고 있다."(동아 2008.5.14)

 

(이야기 2) "서울 A초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입학을 앞둔 A양은 요즘 '스무 살 대학생 오빠와 사귄다'며 친구들에게 으쓱댄다. 160㎝가 넘는 키에 제법 봉긋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 여기에 살짝 화장까지 하면 A양은 초등학생이라고 믿기 어려운 외모다. '또래 남자 애들은 유치하다'는 A양을 보며 친구들은 '키스까지 했다더라'고 쑤군대면서도 부러운 눈치다."(한국 2009.2.24)

 

(이야기 3) "초등 6학년을 '초딩'이나 '어린이'로 취급하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다. 무엇보다 2차 성징이 시작되며 몸부터 달라졌다. 질병관리본부의 2007 청소년건강행태 온라인조사에 따르면, 중ㆍ고등학생의 초경 평균연령은 초등6(12세)과 중1(13세) 사이인 12.4세였다. 20여년 전 중2 무렵에 하던 초경이 대부분 6학년 때로 내려온 것이다. 의학계는 남학생들도 12세를 전후로 남성호르몬이 분비돼 고환이 커지고 음모가 발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어른의 몸을 갖춰가는 사춘기의 첫 관문은 역시 이성교제다. 요즘은 개방된 성 문화와 인터넷 탓에 상당한 스킨십에다 '삼각 관계' '실연의 상처' 등 고민도 적지 않다."(한국 2009.2.24)

 

(이야기 4) "전주시 효자동에 사는 박정미씨(42·가명)는 최근 자신의 열 두 살짜리 아들이, 자신이 방치해놓은 통장을 활용해, 인터넷 공유파일 사이트로부터 20만원 가량을 송금받아 현금으로 사용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깜짝 놀랐다. 아들이 자신의 명의로 아이디를 개설해 '추천인 아르바이트'를 통해 500여명을 모집, 1명당 600포인트씩 30만여 포인트를 쌓았던 것."(전북 2009.3.24)

 

이상 소개한 4개의 이야기는 세간에 떠도는 '공포의 초딩'이란 말이 괜한 말이 아님을 실감케 한다. 이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이 물음과 관련, 수전 린(Susan Linn)의 'TV 광고 아이들: 우리 아이들을 위협하는 키즈마케팅'(김승욱 옮김, 들녘, 2006)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미국에선 1970년대부터 '열쇠 어린이'가 나타났다. 초등학생들이 방과 후부터 부모가 직장에서 돌아올 때까지 집에 혼자 있는 현상을 말한다. 아이들은 집에서 주로 텔레비전을 시청한다. 그것도 주로 MTV다. 10-14세 어린이들만 해도 이들이 전체 CD 판매량의 9%를 차지하고 있으니 MTV 입장에서 아이들은 무시할 수 없는 고객이다. 그런데 문제는 MTV의 주요 소구 수단이 섹스라는 데에 있다. MTV의 한 장면을 보자.

 

"성적인 가사와 장면들이 충격적이었다. 첫 번째 비디오에서는 여자들이 입을 벌리고 신음을 하며 남자 가수 주위에서 몸부림을 쳤다. 두 번 째 비디오에서는 텅 빈 시선의 여자 네 명이 목선이 깊게 파인 옷에 긴 검은색 장화를 신고 빙글빙글 돌았다. 화면에는 그들의 얼굴보다 가슴과 엉덩이가 더 많이 비쳤다."

 

MTV가 유행시킨 뮤직비디오에는 1시간당 약 93개의 성적인 상황이 등장한다. 1분마다 1.5개꼴이다. 로린 힐의 '두왑(Doo Wop)'은 "빨리 정액을 쏴. 이제 어린애 짓은 그만 두고 남자가 돼"라고 노래한다. 폭시 브라운의 '내 인생(My Life)'은 "정말 멍청했지 콘돔을 쓸 걸", '음탕한 여자(Tramp)'는 "날 흥분시켜봐 넌 아직 젖꼭지도 빨아주지 않았어! 제대로 좀 해"라고 노래한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스타인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자기야 한번 더(Baby One More Time)'는 "오 자기야, 자기야/내가 숨쉬는 이유는 바로 너야/아, 너 때문에 나는 눈이 멀었어/아 예쁜 그대/나는 무슨 짓이든 할 거야/그럴 생각은 아니었지만/네가 뭘 원하는지 보여줘"라고 말한다. 성적인 내용은 없지만, 의미심장하다. 후렴구는 좀더 노골적이다. "나한테 신호를 줘/날 때려줘, 자기야, 한 번만 더" 아이들은 이 가사를 따라서 흥얼거린다. 저자는 스피어스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개탄한다.

 

"브리트니는 최신 뮤직비디오에서 허리선이 낮은 꼭 끼는 바지에 손바닥만 한 셔츠를 입고 혼자 나와 성적인 황홀경에 빠져 몸부림치는 장면을 연출한다. 그리고 카메라의 움직임이 그 장면의 효과를 더욱 강화시킨다. 카메라는 브리트니가 빙빙 돌리고 있는 사타구니와 흩날리는 금발 머리, 갈망과 욕망이 담긴 얼굴을 시청자들에게 클로즈업으로 보여준다. 이 비디오가 브리트니를 팔기 위한 광고라고 생각해보면, 그녀가 부위별로 팔리는 살아 있는 고깃덩어리 같다는 생각이 어렵지 않게 떠오른다. 저 엉덩이를 사세요! 사타구니를 사세요! 저 육감적인 입술을 보세요! 브리트니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어린 소녀들에게 카메라는 바로 이런 것들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신체적 매력을 너무 부정적으로 보는 저자의 시각에 전적으로 공감할 수는 없지만, 섹스가 아이들이 즐겨 보는 뮤직비디오의 주요 식량이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키즈 마케팅' 전문가들은 아이들이 '엣지(edge)'를 가져야 한다고 유혹한다. 패션업계를 배경으로 한 SBS 주말드라마 '스타일'에서 자주 등장해 한국에서도 유행의 바람을 탄 "엣지 있다"는 말은 평범한 듯하면서도 비범하고 감(感)이 좋다는 뜻이다. 단어 자체로선 '대담한, 도발적인, 유행을 선도하는'의 뜻이지만, '키즈 마케팅'에서의 '엣지'는 성(性)과 관련된 행동이나 가치관을 의미한다.

 

어린 아이들에게 '엣지'를 제공하려는 업자들의 열성은 인형 시장에까지 파고 들었다. 바비 인형의 라이벌로 브래츠 인형이 등장하면서 '섹시 인형' 바람이 불었다. 바비 인형은 우뚝 솟은 가슴과 가느다란 허리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무성적인 존재처럼 보이지만, 브래츠 인형은 관능적인 엉덩이와 멜론만한 가슴을 뽐낸다. 이에 질세라 바비 인형을 만드는 마텔사는 입술과 엉덩이가 더 풍만한 '마이 신(My Scene)' 바비를 새로 출시했고, 이어 '란제리 바비'를 내놓으면서 브래츠 인형을 압도했다. 일명 '포르노 바비'라 불린 '란제리 바비'는 학부모들의 항의로 매장에서 사라졌지만, 인형들마저 섹스 경쟁을 벌이는 세상이 된 것이다. 미국 중3 여학생들 중 성관계를 경험한 아이들의 비율은 약 3분의 1에 이른다고 한다. 그걸 안 하면 바보가 되는 분위기가 있다나. 이게 과연 '키즈 마케팅'과 무관할까?

 

이 책은 여러 분야에 걸쳐 '키즈 마케팅'의 어두운 면을 고발하고 있다. 물론 다 동의할 필요는 없지만, 지금 한국에서도 전성기를 맞고 있는 '키즈 마케팅'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교사와 학부모가 밀려나고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들이 어린이 교육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반길 일은 아니다. 설마 이걸 '반(反)기업정서'라고 떼 쓸 사람은 없겠지?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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