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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항녕의 인문학 에세이] 사라진 4할 타자…상향 평준화의 결과?

기아타이거즈의 선전을 기원하며

기아(KIA) 타이거즈가 부활했다. 지난 9월 24일 타이거즈는 정규시즌 1위를 확정짓고, 플레이오프에서 올라온 SK 와이번즈를 한국시리즈에서 기다리고 있다. 물론 타이거즈는 9차례 한국시리즈 우승을 자랑하는 야구의 명가(名家)이다. 그래서 통산 10번째 한국시리즈 진출이라고는 하지만, 2001년 해태에서 기아로 간판을 바꿔 단 이후로 한국시리즈 진출은 이번이 처음이다.

 

▲ 프로야구의 추억

 

신군부의 쿠데타로 시작된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은 이른바 3S(섹스, 스포츠, 스크린)로 국민들의 비판의식을 마비시키려는 꾀를 부렸는데, 프로야구는 그에 편승해서 82년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체육관 대통령'이었던 전두환은 82년 3월 27일 동대문에서 열린 MBC 청룡 대 삼성 라이온스 경기에 나와 시구를 했다.

 

그런데 이상했던 것은 군부정권이 대를 이어가며 갖은 음모와 조작으로 경제적으로 소외시키고 정치적으로 탄압했던 호남의 야구팬들이 연고 구단 해태 타이거즈의 경기에 열광했다는 사실이다. 한참 데모를 하고 울분을 달래며 술잔을 기울이던 친구는 막걸리 잔 너머로 들려오는 TV 아나운서의 김성한 선수 홈런 소리에 화색이 돌았고, 남평이 고향인 친구는 옆집 살았다는 이순철 선수 얘기로 내 귀에 딱지가 앉게 했다.

 

종종 그렇듯이 책략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결과를 낳는다. 군사정권의 꾀는 일견 성과를 거두는 듯했으나, 민심이 그리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었다. 해태 타이거즈는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었다. 좌절로 바뀔 수도 있었을, 적어도 긴 슬럼프로 이어질 수도 있었을 80년의 억울함과 분노가 해태 타이거즈와 희비를 같이하며 위로도 받고 유지, 강화될 수 있었다는 것을 군사정권은 몰랐다. 한때 해태 타이거즈에 열광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군사정권의 농간에 놀아나는 행태라고 비난했던 적이 있는데, 이 기회에 한 마디 하고 싶다. 미안했다. 내가 잘 몰랐다.

 

▲ 4할 타자의 진실

 

프로야구에 거리를 두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즐거운 일이 많지 않았던 그때 우리는 자연 몇몇 프로야구에 대한 추억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무척 궁금한 게 있었다. 4할 타자가 어디로 가버렸던 것이다.

 

일본에서 활동하다 귀국했던 백인천은 원년인 82년에 0.412의 타율로 수위타자에 올랐다. 그러나 그뿐, 이후 항상 최고의 교타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던 장효조(87년. 0.387)와 바람의 아들 이종범(93년. 0.393)이 4할에 근접했을 뿐 내내 수위타자들은 대개 3할 5푼 언저리에서 결정되었다. 어찌된 일일까?

 

우선 선수들의 타격 실력이 퇴보했다는 가정은 동의하기 어렵다. 체격조건, 배트 성능 등이 퇴보하지 않았고, 타격 훈련을 위한 정교한 프로그램은 계속 진화를 거듭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투수, 수비, 구단의 관리 능력이 나아졌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타격이 뒤떨어졌다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았다. 타자들의 평균타율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투수의 경우를 보자. 초창기였던 82-87까지는 김시진의 23승이 다승투수의 최소 승수였다. 박철순(82년)은 24승, 최동원(84년)은 27승이었고, 일본에서 왔던 장명부는 그 엉성한 폼으로 83년에 무려 30승을 챙겼다. 반면, 선동렬(90년. 22승) 이후 2007년에 두산 리오스가 22승을 거두기까지 다승투수는 20승이 한계였다. 그러므로 야구 특정 부문의 상대적/절대적 퇴보라는 관점에서 보면, 4할 타자의 소멸은 물론 최다승 승수의 정체 현상도 역시 설명할 수가 없다. 그 논리에 따르면 4할 타자의 소멸을 대가로 투수의 최다승 승수가 올라가야하기 때문이다.

 

▲ 탁월성을 기다리는 호모 루덴스

 

전체적인 수준 향상, 여기에 답이 있다. 4할 타자를 하나의 '실체'로 파악하는 플라톤적 사고에 매달려 있는 한 그 '소멸'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사고방식은 좋았던 뭔가가 사라진 것을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의미로만 해석하게 만든다. 그러나 '타율 4할'은 그 자체가 하나의 항목이나 실체가 아니다. 그것은 시스템의 일부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그림 (1)과 (2)의 오른쪽 벽을 보자. 인간에게는 한계가 있다. 기록은 깨어질 것이나 분명 벽은 있을 것이다. 일단 마라톤이나 100m 기록을 깨기가 점점 힘들어지는 것을 상정하면 될 것이다. 야구에서 이런 패턴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은 야구 기록이 상대 선수와의 상대적인 값을 기록한 것이지 시간과 거리 같은 절대적인 기준에 대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야구 기록의 속성 때문에 보이지 않을 뿐, 프로야구 역시 수준이 올라가면 평균이 오른쪽 벽으로 다가간다.

 

수비를 예로 들면 좋겠다. 평균수비율은 1.000이라는 절대적, 논리적 오른쪽 벽을 가지고 있다. 현재 미국 최고 수비수 5명의 평균이 0.9968이다. 거의 오른쪽 벽에 임박했고, 이는 더 이상 발전의 여지가 없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수비는 마치 물 흐르듯 보인다. 타자들도 마찬가지이다. 투수가 공 하나 잘못 빼면 바로 홈런을 맞는 건 이런 타자들이 보여주는 평균적 탁월성의 한 예이다. 그래서 평균은 계속 같은 값을 유지하지만 타격 능력과 투수(수비) 능력이 그 인간 한계의 오른쪽 벽을 향해 밀집하면서 나아간다.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선수들이 적절한 게임방식에 따라 경기를 하면서 '변이'가 줄어들게 된다. 선수들의 기량과 인간의 한계라는 측면에서 보면 평균이 오른쪽 벽으로 움직여 가고 이에 따라 변이가 확장될 공간이 줄어들게 된다. 4할 타율이란, 실체로서의 '어떤 것'이 아니라, 바로 타율의 변이값들로 이루어진 저 종모양의 시스템의 오른쪽 꼬리일 뿐이다. 따라서 경기의 일반적인 향상으로 변이가 줄어든 결과, 즉 경기가 계속 세련되어져간 결과 4할 타자가 사라진 것이다. 그동안 다른 한편에서 최고의 투수들은 20승 이상을 거둘 기회를 잃어버렸다.

 

그러면 프로야구는 재미가 없단 말인가? 우리가 알다시피, 아니다. 경기가 발전한다는 것은 정확성과 평준화의 확대를 의미한다. 그에 따라 찬탄이 절로 나오는 아름다운 플레이가 반복된다면 무슨 불만이 있겠는가? 인간은 호모 루덴스, 그 아름다운 플레이를 보고 즐기고 노는 동물이다. 운동장의 함성 속에서, 또는 9시 스포츠뉴스 마지막에 다시 보여주는 그날의 명장면을 보면서 그 플레이가 준 감동을 되새긴다.

 

기록은 깨지게 되어 있다. 아마 4할 타자는 또 나올 것이다. 0점대 방어율은 모르지만, 1점대 방어율의 투수는 또 나올 것이다. 그것이 이전보다 훨씬 더 힘들게 얻어진 것이기에 우리는 더욱 찬양할 것이다. 인간이 노력하여 거둔 탁월성에 어디 우열이 있겠는가?

 

/오항녕(한국고전문화연구원·수유+너머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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