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작가 움베르토 에코(77)는 국내에서 소설 '장미의 이름'으로 먼저 이름을 알려 소설가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그에 앞서 뛰어난 기호학자이며 철학자, 역사학자, 미학자다.
그는 중세 철학에서부터 현대 컴퓨터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박학다식하며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라틴어 등을 읽거나 쓸 수 있고 전 세계에서 받은 명예박사 학위만 30여 개에 달하는 대표적인 '르네상스형' 지식인으로 꼽힌다.
24세 때부터 저술을 시작한 그가 50여 년간 펼친 지식의 세계를 만날 수 있는 전집 '움베르토 에코 마니아 컬렉션'(열린책들 펴냄)이 30일 출간된다.
비평 에세이 8권, 문학 이론서 7권, 기호학 5권, 대중문화 비평서 3권, 미학ㆍ철학 2권으로, 그동안 국내에서는 소개되지 않았던 책들과 이미 출간됐던 것을 다시 정리한 책들을 합해 총 25권이다.
이 책들을 한데 모아놓고 보면 백과사전에 가까울 정도로 다양한 주제에 놀라게 된다. 출판사의 표현대로 '움베르토 에코를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단어는 없을' 정도.
1권 '중세의 미학'부터 25권 '나는 독자를 위해 글을 쓴다'까지 주제는 다양하지만, 전집 전체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공통점이라면 움베르토 에코식의 통렬한 문명 비판과 학문 분야를 넘나드는 풍성한 지식, 날카로운 재치와 풍자다.
그는 대중이 숨 쉬는 세상에 대한 분석을 잊지 않는다. '슈퍼맨'과 '본드걸'과 이데올로기를 연계하는가 하면 '피너츠(스누피)'의 주인공 찰리 브라운과 같은 만화 주인공들을 분석하기도 하고 텔레비전과 인터넷에 밀려 좌초 위기에 처한 신문의 생존 전략을 제시하기도 한다.
문학에 대한 유쾌한 사색도 펼쳐놓는다. '롤리타'를 할머니를 향한 성욕을 그린 '노니타'로 패러디하거나 이야기 텍스트와 독자 사이에 벌어지는 신경전을 바짝 추적하기도 하고, 하버드대에서 '책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강의를 하기도 한다.
그가 들려주는 '세상 사는 이야기'도 흥미롭다. 상처 입기 쉬운 세상을 그래도 유쾌하게 살아가는 방법, 책으로 세상을 뚫고 나가는 방법을 일러주거나 책 한 권을 거짓말로 시작해 거짓말로 끝내면서도 진실을 밝히는 작업이 무엇인지 들려준다.
물론, 일상에서 기호의 존재와 의미를 찾는 책, 세상 곳곳에 숨어 있는 기호와 구조를 찾아내는 책, 콜럼버스의 항해부터 바벨탑까지 역사를 오가며 언어와 사고의 흐름을 파헤치는 책, 26세의 젊은 나이에 쓴 중세 미학 이론서 등 학문적 탐구를 담은 책들도 있다.
출판사 열린책들은 2004년 처음 전집을 기획했으며 편집자, 번역자 40여 명이 3만6천장에 달하는 원고에 매달린 끝에 5년 만에 총 9천300장 분량의 책 25권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제작비는 4억여 원으로, 국내 인문 출판 시장을 고려하면 '적자 기획'이라는 게 출판사 설명이다.
출판사는 "다양한 형태의 글을 수집해 저작권자를 찾아 출판 계약을 맺는 데 1년, 컬렉션 형태로 재구성하는 데 1년이 걸렸다"며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이탈리아 출판사에서 계약 만료 통보가 날아오기 일쑤였고, 현재 진행 과정과 출간 의미를 알리는 답장을 보내 설득해야 했다"고 말했다.
열린책들은 책의 미래에 관한 논의를 담은 '책을 버려?'(가제) 등 신작 2권을 내년 상반기 출간할 예정이며, 신작이 나오는 대로 전집에 추가할 계획이다.
손효주ㆍ김광현ㆍ이윤기ㆍ김운찬ㆍ이세욱ㆍ손유택 등 13명 옮김. 각 9천∼2만5천원. 총 38만3천원.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