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웃과 함께 무대…유대감·예술 이해 높여
"서울시하고도 중랑구 상봉동 12단지, 이름하여 생활문화공동체. 온 가족이 함께 해. 일곱 살부터 여든 살까지. 이웃이 가족이 됐네. 우린 어느새 연극배우∼."
지난 5일 서울 중랑구청 대강당에서 연극 '효녀 중랑'의 들머리가 한창 진행중이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 알지도 못했던 이 일대에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중랑연극협회(회장 경상현)와 극단어우름(대표 정혜승)이 서울 상봉동 영구임대아파트 12단지에 연극단을 만들겠다고 노력한 결과물. 하지만 이들이 주민 설득에 나섰을 때만 해도 "물건 팔려는 거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도 바쁜데, 무슨 연극이냐"며 헛바람 넣지 말라는 등 반발이 심했다. 한여름 땡볕에서 '아이스께끼'를 미끼로 설명도 하고, 문전박대 받을 망정 집집마다 돌면서 진심을 이야기하다 보니 동정표가 50%까지 넘어서 관심을 갖는 주민들이 늘어났다.
'생활문화공동체 만들기 시범사업'에 선정된'효녀 중랑'은 조선시대 장님인 아버지 대신 남장을 하고 부역에 참가한 효심 깊은 딸 분이의 이야기. 사또가 분이의 효심에 감복해 남장 했을 때 이름이었던 '중랑'을 고을 이름으로 부르도록 했다는 중랑구 설화를 바탕으로 각색됐다.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영락없는 사또를 소화한 최상윤(74) 할머니의 인기는 압도적. 최 할머니는 "옛날부터 이걸 했으면 여배우가 됐을지 모르겠다"며 "마음 속에 숨겨져 있던 꽃 한 송이가 피는 것 같다"고 했다.
연극에 재미를 느낀 정련화(16)양이 엄마를 '꼬셔' 모녀가 무대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수줍어하던 출연배우 20명 중 모녀나 자매가 함께한 경우는 4가족 중 11명이나 됐다.
관람료는 라면이나 쌀이다. 경 회장은 "쌀과 라면은 쉽게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주민들이 부담없이 연극을 관람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연극의 '연'자도 몰랐던 이들이 연극으로 친해지면서 최근 또다른 고민이 생겼다. 이젠 연극도 끝났으니 어떻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것.
경회장도 "또다른 공연을 올려보자는 주민들의 재촉이 나온다"며 반기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런 공로로 그는 '명예주민증'도 선물받았다. 출연배우들의 사인이 담긴 주민증엔 언제든 집에 들르면 밥을 해주겠다는 주민들의 훈훈한 약속이 담겼다. 연극으로 하나된 예술동네의 꿈이 영글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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