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 장날 FM 개국 생방송…상인·학생·시민들 어우러져
"요즘 여자 요즘 남자 따로있나~"
오랜만에 김제시 요촌동 김제 전통시장이 인파로 북적거렸다.
지붕 아래 매달린 스피커에서는 김제 출신 가수 현숙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백발이 성성한 상인들만 가득했던 시장 구석에는 수십 명의 초등학생들이 성난 망아지마냥 뛰어 놀고 있다.
대체 무슨 일일까?
웬만한 소란에는 눈하나 깜짝 않는 상인들의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그 것, 바로 '김제, 장날 FM라디오'의 개국 공개방송이었다.
2일 오후1시, 시장 내 (구)보건약국 자리에 마련된 스튜디오.
이 날을 손꼽아 기다린 시민MC 김길웅·양정례씨가 마이크를 잡고 방송의 시작을 알렸다.
"반갑습니다! 여기는 89.3MHz 김제 장날 FM라디옵니다."
드디어 시작. 보는 이도, 진행자도 떨리기는 매한가지.
어색한 억양이지만 연습한 대로 또박또박 원고를 읽던 진행자의 발음이 꼬이자 경청하던 상인들은 내 일처럼 안타까워 한다. 재밌는 말 한 마디에 다시 웃는 상인들.
울고 웃으며 이어간 이날 공개 방송은 '친절한 김제씨''장날이야기' 등의 제목 아래 김제의 역사, 김제 전통시장의 변화 등을 30분씩 6개의 작은 프로그램으로 엮어 3시간 동안 진행됐다.
제법 능숙하게 방송을 이끌던 양정례씨가 1부를 마치고 대기실로 들어왔다.
"말도 더듬도 심장도 터질 것 같고 멘트도 꼬이고 진행 순서도 빼먹고…. 30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어요. 연습을 더 했어야 했는데, 에잇!"
이마에 맺힌 땀을 채 닦기도 전에 실수를 줄줄이 읊어대며 아쉬운 점을 늘어놓았다. 양씨의 말에 너나할 것 없이 웃었지만 다음 진행자들은 이내 바짝 긴장했다.
2부 게스트로 참여하는 시민 권희옥씨도 "연습하면 진행자와 호흡은 잘 맞는 것 같았는데, 생방송이라 긴장하면 어떻게 될 지 모르는거죠"라며 떨리는 속내를 전했다.
스튜디오 앞에서는 김제초등학교 학생들이 벌인 '알뜰장터'도 함께 열렸다. 입지 않는 옷이나 신발 등을 늘어놓고 친구들끼리 사고 팔며 수익금은 불우이웃을 돕는데 전하는 따뜻한 자리였다. 앞서 방송 전에는 축하공연도 펼쳐졌다.
상인들도 시끌시끌한 시장 모습이 낯설면서도 내심 반가운 모양이다.
가게 앞으로 한참 나와 구경하던 '맛나반찬' 사장님은 "삭막하고 조용한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는 것 같아 좋네요"라며 "노래만 나오는 것보다는 시장 상인들이 직접 진행까지 하니 재밌다"며 힘을 더했다.
생선가게 사장님도 "이런 일 아니면 언제 이렇게 아이들을 시장에서 볼 수 있겠어요"라며 "시끌벅적하니 이제 진짜 시장 같고 좋고만요"라며 너털웃음을 지어 보였다.
장터 라디오는 오늘 3시간 방송을 끝으로 스튜디오는 문을 닫지만 대신 장소만 옮겨 인터넷 방송으로 이어갈 계획이다.
장을 보러 왔다는 시민 정현옥씨(66)도 "무슨 일인가 깜짝 놀랐는데 재밌네요. 시장이 원래 이렇게 즐거운 곳이어야 하잖아요"라며 격려의 말을 전했다.
침침한 눈을 비벼가며 원고를 쓰고, 종일 채소 팔고 돌아와 뻐근한 목을 주무르면서도 처음 해보는 방송이 그저 재밌고 신기해 한 달 동안 교육도 꼼꼼히 받았다는 상인들.
전통 시장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상인들의 노력에 시민들도 환영한다고 하니 이 정도면 제법 값진 성과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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