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제식 교육 계보·유파간 담만 쌓게 해
가장 잘 어우러질 것 같으면서도 화합하지 못하는 곳이 문화예술 분야다. 예술가가 자기 예술에 대한 철학과 믿음이 없을 경우 예술이라는 쉽지 않은 길에서 스스로 존재하기 어렵기도 하겠지만, 이 철학과 신뢰가 때로는 고집으로 작용해 외부와의 소통을 어렵게 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 문단사를 이끌어 온 전북 문단. 그 중심에는 전북문인협회와 전북작가회의가 있다. 2000년대 들어 함께 '문인 친선 바둑대회'를 열고 '석정문학제'에 힘을 보태는 등 두 단체의 교류가 부쩍 활발해졌다. '전북 문단의 르네상스'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었지만, 이후 두 단체가 소통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최근에는 전북문학관 건립과 운영권을 둘러싸고 보이지 않는 촉을 세우고 있는 듯 하다.
전북 서예계는 한 때 갈등의 골이 깊었다. 서예인들이 어느 단체에 소속됐느냐가 일정한 계파를 형성하게 됐던 것. 전북서단이 한국미술협회 서예분과, 한국서예협회, 한국서예가협회로 나뉘어지면서 주도권 싸움이 됐고, 스승과 제자의 관계까지 얽혀지면서 난맥상이 됐다.
일부에서는 신생단체가 실력없는 사람에게 초대작가를 부여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고, 또다른 곳에서는 일부단체가 독식을 하면서 전북 서단의 위계질서를 임의대로 조정한다며 불만을 제기했다. 올해 서예비엔날레가 '소통'을 주제로 연 학술대회와 전시'새로운 사조를 꿈꾸다'는 실력 위주로 전북 서단을 정리, 계파를 떠나 유파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이었다.
계보와 유파가 분명한 국악에서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제자가 다른 스승에게 가 공부할 경우 스승에게 밉보이는 건 공공연한 사실. 판소리의 경우 동편제가 중심인 전북에서 다른 소리를 이어가고 있는 소리꾼들을 발을 붙이기 조차 힘들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계보와 유파가 다른 소리꾼들이 한 자리에 선다는 것은 꿈과 같은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올해 전주세계소리축제는 판소리는 물론, 민요와 무용, 기악 등의 명인명창들이 한 무대에 오르는 송년소리나눔 '광대의 노래'를 시도했다. 일부에서는 명인명창들의 서열을 따지지 않고 한 무대에 올리는 것은 전통예술에 대한 권위를 떨어뜨리는 처사라며 반발하기도 했지만, 공연을 준비한 양승수 전 전주세계소리축제 프로그램팀장은 "장르의 계보와 유파에 따라 갈등이 심했던 전통공연예술이 한무대에 서면서 국악이 새롭게 재편된다는 인상을 받았다"며 "서로 다른 장르간의 교류가 이뤄지면서 오히려 자신의 색깔을 더 강화해 차별성을 띄려는 경향이 나타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도제식으로 교육이 이뤄지고 있는 전통예술 분야에서 스승을 필두로 계보와 유파간 갈등이 심할 수 밖에 없지만, '불통(不通)'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다면 예술 분야의 발전 또한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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